늘 이렇지, 펄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 P29

시간은 아무리 흘러조 느려지지 않아 - P41

.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 P56

펄롱은 억지로 자동차 키에 손을 뻗어 시동을 걸었다. 다시 길로 나와 펄롱은 새로 생긴 걱정은 밀어놓고 수녀원에서 본 아이를 생각했다. 펄롱을 괴롭힌 것은 아이가석탄 광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펄롱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ㅡ그 아이가부탁한 단 한 가지 일인데 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 P99

왜 가장 가까이 있는 게 가장 보기 어려운 걸까? - P111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 P119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더 옛날이었다면,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었다. 이걸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펄롱이 어떻게 되었을지, 어떻게 살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 P120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 집으로 가는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 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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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살아가며 연민을 잊지 않는 일에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 균형과 전환 사이에서 기이한 파열음이 나는 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라는 건, 개인들의 자유로운 반응 속에서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화학작용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며 발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 그 자유를 지켜볼 수있을지를 더 자주 곱씹어보게 된다.
각자의 시선이란 잔인할 정도로 개인적이고, 우리의 망막에 고인 타인의 고통은 아무리 자극적이어도 눈물 한 방울 내지 못한채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방 한구석에 던져 놓은 신문뭉치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새로운 물건을 만들듯이, 시야어딘가에 머무르다 펼쳐보게 될 가능성이 있는 무언가라고 생각하며 되도록 조금 더 천천히, 더 담담한 뉴스를 만드는 건 어떤가.
빨리 시선을 잡아채는 것이 반드시 변화를 약속해 주지 않는다는사실을 학습한 지 오래이니, 오래 걸리더라도 있어야 할 것, 알아야 할 것, 알려야 할 것을 균형 있게 생산해 내는 매체로 머무는 건어떤가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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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걸 보이지 않아야 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고쳐져야 하는 건 보이는 인프라나 환경만이 아니라 이들을 어둑한 땅속으로밀어넣고서 깐깐한 고용주라도 된 것처럼 노동과 쉼을 고작 자신의 눈에 띈 장면만으로 평가하는 무례함이다. - P124

앞서 말했듯 특혜에서 배제된 집단으로 묘사되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은 선한 일을 하는 경우에도 악한 일을 하는 경우에도약자라는 맥락 안에서 조명받곤 한다. 약자의 선행을 바라볼 때는그 사람이 속한 집단이나 계층의 특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한개인의 독특한 선함의 질감을 놓치지 않도록, 악행을 바라볼 때는개인의 악함으로는 다 포착되지 않는, 그가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영향을 미친 사회적 요인과 모순에 고루 책임을 묻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꾸만 약자의 일을 저 멀리 타자화하며, 나와 관련 없는 남의 일로 간단히 치부해 버리는인지적 게으름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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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는 카메라‘에 관한 오랜 공포가 있다. 찍고 있지만 상황을 냉담하게 기록할 뿐, 상황을 개선하지 않는 카메라.
이 공포는 카메라를 꺼내들어 남의 절박한 고통을 보고 듣고 기록하고 생중계하는 순간부터 시작돼 편집하고 재구성한 뒤 널리고뜨린 이후까지 이어진다. 공포의 근원은 이걸 찍어서 보여준 뒤에도 내가, 이걸 본 뒤에도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못할 수도있다는 데 있다. - P28

그러니 대상화를 무작정 멈추라는 말은 함정이다. 타인에 대한말하기가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를 도울 기회를 알지도 못한 채 지나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시선이 구경이 될 수 있다는걱정에 빠져서 고통을 보는 일 자체를 멈춘다면, 그것은 또 다른인간성 실패의 시작일 것이다. 우리의 눈은 움직일 수 있다. 자랑스럽지 않은 이유로 머물렀다고 하더라도 더 나은 곳으로 분명히이동할 수 있다. 본 뒤에 무엇을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전달과전달, 중개와 중개를 통해 유예되어 버린 행동의 가능성이 당신에게 있으니까. - P36

고통의 포르노 운운하기 전에 인터넷이 불러온 진짜 문제는 우리를 기다리는 죄책감의 총량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통을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자각은 죄책감과 무력감의 원천이 된다. 동시에 사건 바깥에서 비난하는 무고한 위치에 자신을놓고 정의감에 빠져들거나, 거리감을 핑계로 죄책감으로부터 도망하기도 쉽다. 전에는 언론사들에만 맡겨져 있던 뉴스의 생산과유통의 몫이 얼마간 이용자에게까지 넘어가며 책무 역시 분산됐다. 사람들은 숱한 플랫폼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 P49

그저 고통의 착즙기처럼 한 방울까지 쥐어짜고 있다는 자각약자를 대변하겠다는, 젊지만 낡아빠진 기자스러운 다짐은 어쩌면 약자에게 목소리를 빼앗겠다는, 그들의 말을 고르고 편집하여내보낼 권한을 양보하지 않겠다는 말의 위선적인 버전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 P82

피해자들이 죽어갔던 금남로 5.18 민주광장 한복판에는 2016년 ‘5.18 진상 규명‘이라는 거대한 글씨가 구조물로 들어섰다. 어머니들은 40년 전에도, 지금도 울고 있는 모습으로 뉴스에 등장한다. 너무나도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그보다 전형적인 건 가해자의 행태이니, 적어도 피해자의 전형성을 견뎌야 할 책임이 언론에있다고 믿기에 망설임 없이 그 모습을 포착하게 된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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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는 그것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죽음에 대한두려움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수많은 단점을 가진 인간이었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거기에 없었다. 그가 얼마 안 되는 오라시오 추종자들과 함께 독재자와 맞서 전투를 벌였을 때도 그는 여러 번 목숨을건 행동을 했었다.
그것은 두려움보다 더 난해하고 딱히 뭐라고 정의내릴 수 없는 것이었다. 마비 상태, 즉 결단력과 이성과 자유의지가 잠들었기 때문이다. 고음의 목소리와 위선자의 시선을 지녔고,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몸단장에 신경 쓰고 장식한 그 남자가 가난한사람이건 부자건, 친구건 적이건 모든 도미니카 사람들에게 주문을걸듯 행사하던 활동 불능 상태였다. - P158

생각하는 것과 매일 반대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아무도 모르는 그의 마음 후미진 곳에서 그는 트루히요에게사형선고를 내렸다. 트루히요가 살아 있는 한 자기를 비롯한 수많은도미니카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혐오와 불쾌감 속에서 살아가야 할것이며, 매순간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다른 사람을 속이며 한사람이면서도 두 사람이 되어야 하는 형벌 속에 살아가야 한다고, 즉공적인 장소에서는 진실을 감춘 채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야만 한다고확신했다. - P247

그는 살며시 눈을 감고서 조용한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트루히요가 만들 수 있었던 체제, 도미니카 사람들이 조금 빠르거나 늦은 차이만 있을 뿐 모두 공모자로 참여했던 체제가 얼마나사악한지 생각했다. 망명자(이들도 항상 그런 건 아니었다)와 죽은사람만 빠져나갈 수 있던 체제였다. "도미니카 사람에게 가장 큰 불행은 똑똑하고 능력 있는 거야"라고 언젠가 알바로 카브랄( 그는 정말현명하고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었어‘라고 생각했다)이 말하는소리를 들었고, 다음의 말을 뇌리에 깊이 새겼다. "왜냐하면 조만간트루히요가 그를 불러 체제에 봉사하라고, 혹은 그 자신을 위해 봉사하라고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야. 일단 호출되면 거부하는 건 허락되지 않아." 카브랄은 그런 진실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는 내각에 임명되는 것에 최소한의 저항도 하지 않았다. 에스트레야 사드알라가말했듯이, 염소는 하느님이 그들에게 부여한 성스러운 속성, 즉 자유의지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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