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의 탐구의 생산성은 언어의 발생을 ‘나‘, 초월적 의식, 나아가 신화적이기는 매한가지인 심신적인 자아를 통해 파악하는 현대 문화의지배적 전통을 거부하면서 주체, ‘나‘, 의식과 같은것이 어떻게언표와 일치할수있는가, 어떻게 언어의 순수한 발생과 일치할수있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는 데서 나온다. - P207

나치 관료 제도의 은어로 ‘최종적 해결‘에 가담한 사람들이 ‘Geheimnistriäiger‘, 즉 비밀을 지닌자라고 불렸다면 ‘이슬람교도‘는 절대적으로 증언 불가능한,
생명 권력의 보이지 않는 은신처 [보관함]인 셈이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비어있기 때문이며, 즉 ‘이슬람교도‘가 ‘volkloserRaum‘, 곧 사람이 없는 공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수용소 - P230

의 심장부에 있는 이 사람이 없는 공간‘은 모든 삶을 그 자체와 갈라놓음으로써 시민이 비아리아인 혈통의 ‘국가의 일원‘
Staatsangehörige‘이 되고, 비아리아인이 유대인이 되고, 유대인이유형수가 되고,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추방된 유대인들이 자기를 잃고 ‘이슬람교도‘가 되는, 즉 벌거벗은 삶, 특정 불가능하고증언 불가능한 삶이 되는 지점을 나타내는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아우슈비츠에 대해 말하는 것의 불가능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할 때 보다 신중해야 한다. 만약 그들이 증인은 자기가하는 모든 말을 어떤식으로든 말함의불가능성이라는 시험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아우슈비츠가 고유한 사건이었다는 의미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면 그것은 옳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고유함을 말함의 불가능성에 결부시킴으로써 아우슈비츠를 절대적으로 언어와 단절된 현실로 바꾸어버리는 것이라면, 만약 (이슬람교도‘의 경우에 있어서는 증언의 핵심인) 말함의 불가능성과 가능성 사이의 이음매를떨어뜨리는 것이라면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나치의 제스처를반복하는 셈이다. 즉 그들은 통치의 비밀 arcanum imperi과의 은밀한연대 속에 있는 것이다. - P231

사이의 원초적 관계에 의존한다. 증인 자격은 그가 말할 수 없음의 이름으로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 말해 그/그녀의 주체됨에 있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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