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는 죽음의 수용소이기 이전에 오늘날 사유되지 않은채로 남아 있는 어떤 실험, 유대인이 ‘이슬람교도‘로 화하고 인간이 비인간으로화하는, 삶과 죽음 너머의 실험이 일어난 장소이다. - P79
걸어 다니는 시체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비참해지고전락해버렸지만 아직은 인간인 그러한 존재로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우선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무엇이 각자 자신의불회귀점을 형성하는지 잘 알고 있어야 했다. 아무리 다급한 상황일지라도, 심지어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지라도 결코 압제자에게 굴복하지 않을지점 말이다. 그것은, 누군가 이 지점을 넘어서는 대가로살아남았다면 그는 간신히 목숨을 부여잡고 있기는 하겠지만 그러한목숨은 이미 모든 의미를 상실한 것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함을 뜻했다. 그것은 생존을 의미할 터이나 뭉개진 자존심이라도 가진생존이 아닌, 아무것도 없는 생존일 터였다(Bettelheim, 1960:157). - P84
수인을 ‘이슬람교도‘로 바꾸어 버리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모든 감각과 모든 내면적 의구심을 저버리는 것, 무슨일이 있어도 굳게 붙들고 있어야 할 어떤 지점을 놓아버리는 것이었다. - P85
그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부끄러움이었다. 가스실로 보내질 인원에 대한 선별 작업이있고난후 그리고 지독한 폭력을 지켜보거나 묵묵히 감수해야만했을때면 어김없이 우리를 가라앉게 만들었던 바로 그 부끄러움이었다. 독일인들은 몰랐던 부끄러움, 의로운 사람이 다른 사람의 범죄를 보고 느끼는 부끄러움, 그와 같은 범죄가 존재하며 그것이 결국 기존의세계에 들어와 버렸다는 사실 앞에서 경험하는 부끄러움, 자신의 선한 의지는 너무도 미약하거나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고, 그러한 의지는 자신을 지키는 데 전혀 소용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서경험하는수치심 말이다(Levi, 1986: 181~82). - P132
그때부터 어느 어렴풋한 시각 그 끔찍한 순간들이 되살아난다. 그리고 그것은 들어줄 누군가를 찾지 못하면 그의 가슴속 심장을 태운다. 다시 한번 그는 다른 수인들의 얼굴을 본다. 새벽빛을 받아 푸르스름한 얼굴들, 온통 시멘트 먼지로 뒤덮여 잿빛인 얼굴들, 불안한 잠속에서 죽음으로 채색된 얼굴들 말이다. 밤에는 이를 갈고, 꿈도 꾸지 않고, 들어 있지도 않은 돌을 씹어댄다. "여기서 사라지게, 익사한사람들이여, 꺼지란말이네. 난어느누구의 자리도 빼앗지 않았네. 난 누구의 빵도훔친 적이 없네. 내 대신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네. 정말 아무도 그대들의 세상으로 돌아가게. 내가 살아서 숨쉬고, 먹고 마시고 자고 입고 있는건 내 잘못이 아니라네" (Levi, 1988:581) - P136
죄책감을 느낄수 있어야만 우리는 인간일 수 있다. 객관적으로 보아 죄가 없을 때에도인간은 죄책감을 느낄수있어야만 한다(Bettelheim, 1979:296,313). - P141
우리는 아우슈비츠의 영원회귀를 바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사실 한 번도 중단된 적 없이 항상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항상미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 P152
따라서 부끄러움에서 나타나는 것은 바로 스스로에게 결박되어 있다는 사실, 자신을 저버리고 자신을 자신으로부터 감추는 것이 철저하게 불가능하다는 사실, 자아가 그 자신에게 현전한다는 참을 수 없는사실이다. 벌거벗음이 부끄러운 것은 그것이 우리 존재의 노골성, 궁극적 친밀함intimacy의 노골성일 때이다. 그리고 우리 몸의 벌거벗음은정신에 대립하는 어떤 신체적인 것의 벌거벗음이 아니라 우리의 전존재의 벌거벗음, 너무나도 충실한, 너무나도 확실한 벌거벗음, 드러남이 가장 잔인한 벌거벗음, 그래서 도무지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벌거벗음이다. <도시의 불빛>에서 찰리 채플린이 삼키는 호루라기는그의 존재의 잔인한 현전이라는 치욕이 드러나게 해준다. 그것은 저유명한 채플린의 연미복이 간신히 감추어주는 현전의 분산된 기호들이 드러나도록 해주는 기록 장치 같은 것이다. 부끄러운 것은 우리의친밀함, 즉 우리의 우리 자신에게의 현전인 것이다. 그것이 드러내는것은 우리의무가 아니라 우리의 실존 전체이다. (……) 부끄러움이드러내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인 것이다(Levinas, 1982:87). - P158
혐오감에 대해서는 다행히도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일방통행』의 한 아포리즘에서 간략하지만 적절한 분석을 제시하고있다. 벤야민에 따르면 혐오감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감정은 불쾌감을 일으키는 대상이 우리를 알아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자기 안에 있는 동물과 비슷한것이 자기를 알아보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의식이다"(Benjamin, 1979: 50). 혐오감을 경험하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혐오 대상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한편으로자신이 인식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혐오감을 경험하는 사람은 감당될 수 없는 타자성 속에서 자신을 인식한다. 즉 그는 어떤 절대적 탈주체화속에서 자신을 주체화하는 것이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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