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녀는 무척 외로웠다. 아버지는 오래전에 죽었고 그의 팔걸이의자는 다리 하나가 떨어져 나간 채 다락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녀는 여위어갔고 미모를 잃었으며 거리를 지나는사람들은 전과 달리 그녀에게 눈길을 주거나 미소를 짓지 않았다.
그녀의 가장 좋은 시절은 끝났고, 이제 지나가버렸고, 새로운 종류의 삶이 시작되었다. 생각만 해도 견딜 수 없는 낯선 종류의 삶이었다. 저녁이면 올렌카는 포치에 앉아 티볼리에서 악단이 연주를 하고 꽃불이 터지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제는 그런 것이 그녀의마음에 어떤 것도 암시하지 않았다. 그녀는 텅 빈 마당을 무심하게보았고,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밤이 오면 침대로 가텅 빈 마당 꿈을 꾸었다. 그녀는 마지못해 먹고 마셨다. - P207

그러나 이는 한순간일 뿐, 이내 다시 공허가 찾아오고 또 한 번 그녀는 삶이쓸모없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검은 새끼고양이 트로트가 몸을비비며 작게 가르랑거렸지만 올렌카는 이런 고양이의 애정 표현에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게 그녀가 원하던 것인가? 그녀에게는존재 전체를, 영혼과 정신을 사로잡을 애정, 그녀에게 사상과 삶의목적을 줄 애정, 늙어가는 피를 덥혀줄 애정이 필요했다. - P208

우리는 상황이 어떠한지 어떠하지 않은지 안다. 상황의 흐름이 어떠하고 어떠하지 않은지 안다. 상황이 대체로 어느 쪽으로 움직이고어느 쪽으로는 절대 움직이지 않는지 안다. 그리고 우리는 이야기가세상이 움직이는 방식에 대한 우리의 감각과 일치할 때 좋아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전율을 일으키고, 진실에서 느끼는 이런 전율 때문에우리는 계속 읽어나간다.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에서 우리가 계속 읽어나가는 주요한 이유는 사실 그것이다. 모든 게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가볍게 회의하는 상태에서 읽는다. 모든 문장은 진실에 대한 작은 투표다. "진실이냐 아니냐?" 우리는 계속 묻는다. 우리의 답이 "그래, 진실로 들린다"이면 우리는 그 작은 주유소에서 튕겨져 나와 계속 읽는다. - P343

하지만 나는 톨스토이가 그사이에 도덕관념을 수정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글을 쓰는 동안 자신의 도덕적 신념의 목소리와는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고 말하고 싶다. 그는 내가 소설의 지혜라고 부르고 싶은 것에 귀를 기울였다. 모든 진정한 소설가는 그 개인을 넘어서는 지혜를 찾아 귀를 기울이고, 그래서 위대한 소설은 늘 그것을 쓴 사람보다 조금 더 똑똑하다. 자기책보다 똑똑한 소설가는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 P346

그럼에도 모든 집과 모든 거리에 평화와 고요가 있소. 우리 읍에 사는 5만 명 가운데 소리쳐 우는사람, 큰소리로 분노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소. 시장에 가고 낮에는먹고 밤에는 자는 사람,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고 결혼하고 나이 들고 죽은 자를 선한 마음으로 묘지로 끌고 가는 사람을 보지만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거나 듣지는 못하오. 인생에서 끔찍한 일은 어딘가 막후에서 벌어지니까. 모든 것은 평화롭고 고요하며 오직 말 없는 통계만이 이의를 제기하지요. 아주 많은 사람이 제정신이 아니고 아주 많은 보드카를 마셨고 아주 많은 아이가 영양실조로 죽었다고. 하지만 이런 상태는 분명히 불가피하지요. 당연한 얘기지만행복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말없이 그들의 짐을 져주고 있어 편안한 거잖소. 이런 침묵이 없다면 행복은 불가능할 거요. 하지만 15이건 집단적 최면이오. 모든 만족하고 행복한 자의 문 뒤에는 반드시작은 망치를 든 불행한 사람이 있어 계속 거기 서서 문을 두드리며 그가 아무리 행복하다 해도 조만간 인생은 발톱을 드러낼 거라고, 고통이, 그러니까 병과 가난과 상실이 찾아올 거라고, 그때가 되면 지금 그가 다른 사람들을 보거나 듣지 못하듯이 아무도 그를 보거나 듣지 못할 거라고 상기시켜 주어야만 하오. 하지만 망치를 든 사람은 없소. 행복한 사람은 바람 속 사시나무처럼 일상의작은 걱정에 희미하게 파닥거릴 뿐 편하게 살고 있소. 그렇게 모든게 아무 문제 없소?"
l - P503

내가 체호프에게서 가장 감탄하는 것은 그가 글에서 의제로부터정말 자유로워 보인다는 점이다. 그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지만 어떤 고정된 믿음의 체계와 결합하지 않고 자료가 자신을 이끄는 어디로든 갈 용의가 있다. 그는 의사였고, 그가 소설에 접근하는 방식은애정 어리면서도 진단적으로 느껴진다. 진찰실로 들어가 거기 앉은
‘인생‘을 보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멋지군, 어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봅시다!" 그에게 강한 의견이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그가 쓴 편지들이 증거다). 그러나 그는 최고의 이야기(여기에 나는 이책에서 소개한 세 편 외에 추가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골짜기>, <적들>, <사랑에 관하여>, <주교>를 넣고 싶다)에서 형식을 이용해 의견을 넘어 움직이고, 우리가 의견을 표현하는 데 사용하는 일반적인 방법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그에게 계획이 있다면 계획을 가지는 일에 주의하는 것이다.
그는 말했다. "나에게 지성소는 인간의 몸, 건강, 지성, 재능, 영감,
사랑, 또 절대적 자유, 폭력과 오류가 어떻게 나타난다 해도 그 둘로부터의 자유다." - P529

세상에 대한 이런 애정은 그의 이야기에서 끊임없는 재검토 상태라는 형식을 띤다(확실한가? 정말 그럴까? 내가 기존의 의견 때문에뭔가 빼먹는 걸까?). 그에게는 재고의 재능이 있다. 재고는 어렵다.
용기가 필요하다. 늘 똑같은 사람, 얼마 전에 해답에 이르렀고 그것을 의심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이 되는 안락을 거부해야 한다. 달리 말해 늘 열려 있어야 한다(자신만만한 뉴에이지 방식으로 열려 있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현실에서 무시무시한 삶과 마주하면서 실행에옮기기는 매우 어렵다). 우리는 체호프가 계속 의례처럼 모든 결론을의심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위로를 받는다. 재고해도 괜찮다. 그것은 고상하여 심지어 거룩한 일이다. 그랄 수 있다. 우리는 재고할 수 있다. - P530

"사람을 지루하게 만드는 비결은 그들에게 전부를 말해주는 것이다." 체호프가 한 말이다. - P593

따라서, 걱정 말고 일이나 하고, 모든 답이 그 안에서 발견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라.* - P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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