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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평점 :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때문에 손해만 봐왔다고 선언하면서 시작하는 <도련님>은 그 성격 탓에 조용할 날이 없는 도련님을 그리고 있다. 뛰어내리지 못한 거란 친구의 비아냥에 2층에서 바로 뛰어내리지 않나, 외제 칼날의 성능을 믿지 못하는 친구의 말에 서슴없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보지 않나, 이웃 논에 논구멍을 막아 물난리를 겪게 만드는 등 도련님은 뭐든 재지 않고 해보는 탓에 집에서도 밖에서도 처치곤란한 존재이다. 부엌에서 공중제비 넘다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고도 ˝꼴도 보기 싫다˝는 말에 집을 나갔다가 그 사이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본의아니게 불효자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런 천덕꾸러기 도련님을 단 한 사람, 사랑하고 아끼는 이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어머니도 아니고 할멈 하녀 ‘기요‘이다. 사람들 몰래 자신만 챙겨주는 기요의 행동이 못내 불편한 도련님은 사람들 눈 속여가며 나만 덕보는 건, 체질상 맞지 않다. 그런 도련님에게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는 기요의 일방적인 사랑과 믿음은 세상과 불화를 늘 달고 다니는 그에게 이상한 주문과 다가온다.
그놈의 앞뒤 안가리는 성격 탓에 도쿄 토박인이 도련님은 느닷없이 한적한 시골 중학교 수학교사로 가게 된다. 그런데 그 중학교는 이상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너구리같은 눈을 가진 교장, 일년 내내 빨간 셔츠만 입는 교감, 창백한 얼굴의 끝물호박 영어선생, 밤송이머리 하고 있는 산미치광이 수학주임, 교감앞에서 간지러운 얘기를 늘어놓는 미술교사 알랑쇠 모두, 도쿄토박이인 도련님의 눈에는 죄다 이상하게 보인다. 이상한 건 선생들 뿐인가? 애들도 이상하고, 시골동네도 이상하다. 이 손바닥만큼 작은 동네에는 내 공간이 하나 없는 것 같아 도련님은 슬프기만 하다. 매일 가는 온천이며, 혼자 먹었던 경단이며, 이 동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정탐하는 것 같아 울적하다. 난 그들에게 관심 하나 없는데, 왜 가만히 있는 나를 혼자 내버려 두지 못하는 건지..
솔직할 뿐이요, 정직할 뿐인 도련님에게 세상은 욕망과 위선으로 가득 찬 의뭉스러운 곳이다. 선생이라는 작자들은 학생들 앞에서는 젠체하면서 뒤에서는 자신들의 욕망을 쟁취하기 위해 이전투구한다. 당직 때 학생들의 짖궃은 장난으로 봉변을 당한 도련님은 학생들에게 관용을 베풀자는 교장, 교감이 이래저래 마뜩치 않다. 그러다가 우연히 교감과 영어선생, 마돈나, 이 세사람의 연애사를 듣게 되면서 도련님은 ˝인간만큼 믿을 수 없는 존재는 없다˝며 세상에 더욱 뒷짐지며 물러난다. 그런 도련님이 교감의 모략에 휘말려 벽지로 전보가는 끝물호박에 가슴 아파하고, 봉급인상으로 자신를 회유하려던 교감에게 발끈하는 것은 출세, 부, 위선으로 굴려가는 세상사에서 하찮은 것들로 밀려나는 선한 가치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닐까 하다. 정직해서 손해보고, 솔직해서 비난받았던 도련님에게 순응하고 관대했기에 무시당하고 뺏앗길 수 밖에 없었던 끝물호박은 남같지 않았던 것이다. 급기야 산미치광이와 함께 도련님은 교감을 미행, 그의 구린 뒤를 밝혀내려고 하지만 그것마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도망가지도 숨지도 않을 거라며˝ 교감과 알랄쇠에게 최후의 대결을 통보하고 이들은 사직서를 던지고 그대로 각자의 길을 떠난다.
소설에서 도련님은 정직하고, 솔직하고, 앞뒤 안가리는 성격 탓에 늘 세상과 불화한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숨기려 하지도 않고, 애써 무언가를 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 것은 한 것이고 안 한 것은 안 한 것이다˝이란 신념을 가진 도련님은 아무리 세상과 불화해도 아쉬울 게 없다. 내가 한 일은 내가 책임질 뿐, 거기에는 어떤 거창한 도덕이 필요한 게 아니다. 젠체하고 어떤 가식이나 떠는 건, 당최 도련님에게 가당치도 않는 일이다. 그런 것을 하는 사람이라면 상대 못할 하찮은 놈들이라 도련님은 생각한다. 그렇기에 도련님의 행동에는 어떤 꾸밈이나 가식이 없다. 자신의 마음을 군더더기 없이 보이기에 그는 자신의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드러난 욕망은 제 갈 길을 가면 되고, 자신은 그냥 뒷짐지고 쳐다보면 될 뿐이다.
민낯이 더이상 예의가 되지 못하는 세상이다. 적당한 화장과 적당한 가식과 적당한 위선이 善이고, 예의가 되었다. 세상과 불화하지 않은 척 애쓰는 게 당연하고, 어느 드라마 대사처럼 모든 관계가 노동이 되는 현실을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세상에 당당히 세계와 불화하면서 자신의 날 것 그대로, 아무런 꾸밈없이 살았던 도련님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이 매력만점의 도련님을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