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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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마지막 페이지를 읽은 후 내지른 탄성이다. 너무 마음에 들었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까지, 이 책의 여운은 가시지 않고 있다.

그닥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이 책은 나의 그러한 선입견을 무참히 깨버렸다.


1982년, 막 건축학과를 졸업한 새내기 사회인인 ‘사카니시 도오루’(이하 사카니시)는 전 일본에서 선망받고 있던 대건축가인 ‘무라이 슌스케’(이하 무라이)의 건축설계사무소에 입사하게 된다. 갓 여름이었던 배경 속 신출내기 건축가인 사카니시는 무라이 씨와 동료들과의 생활을 통해 건축가로서 점점 성장해나간다. 소설은 이 과정을 ‘여름 별장’을 배경으로 푸른 잎사귀가 무성한 여름을 시작으로,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을 지나,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까지 이끌어나간다. 


곤충, 새, 음악, 건축 등 다양한 분야를 통섭해 아주 세밀한 묘사를 하는 작가의 능력은 정말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사카니시 군의 무라이 건축설계사무소 여름 별장 생활을 큰 줄기로 삼아, 다양하게 뻗어나가는 줄기와 잎사귀같은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고, 여운을 남긴다. 소설의 중반 부분 등장하는 사카니시 군의 ‘썸’과, 후반부 무라이 씨의 죽음과 같은 긴장되는 사건들 속에서도, 작가는 잔잔한 호수와도 같은 자신의 특징을 잃지 않고 그저 뚝심있게, 묵묵히 나아간다. 


이 책을 읽어가며,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가 떠올랐다. 어찌보면 주제도 그렇고, 스타일도 매우 다른 두 소설이다. 하지만 두 책을 모두 되물어보면, 두 작가 모두 공간에 대한 높은 이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소설을 한층 빛나게 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아우스터리츠에서 ‘기차역’과 ‘여러 건축물’에 대한 작가의 심도있는 묘사와 언어 구사는 아주 매력적이다. 마쓰이에 마사시 역시 건축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소설 안에서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그렇지만 과하지 않게, 정확하고 매력적으로 언어를 독자에게 전하고 있다. 현실에서 두 작가가 만났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ㅎㅎ


소설의 주된 배경이 되는 여름 별장에서는 지속적으로 무라이 씨의 건축 관념과 같은 소박함과 잔잔함이 이어진다. 누군가는 지루하다고 불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주인공들의 대화와 배경 묘사를 듣고 있자면, 지루함은 커녕, 궁금증에 페이지를 자꾸만 넘기게 된다. 마치 ‘감정 이입’이 격하게 될 정도다.


“잘된 집은 말이야, 우리가 설명할 때 했던 말을 고객이 기억했다가 자신의 집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게 되지. 우리 건축가들의 말이 어느 틈엔가 거기 사는 사람들의 말이 되어 있는 거야” 60p


“남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돼오는 것을 좋아해...새들도 세력 범위라든가 사랑이라든가 심플한 것을 노래하니까 순진하고 예쁜 소리를 내는 게 아닐까?” 98p


“무엇보다도 설득력을 지니는 것이 디자인이라는 생각은 늘 선생님 설계의 중심에 있다” 119p


“커브를 돌자 까만 바이크와 우치다 씨는 금방 어둠 속에 녹아들어갔다” 153p


“나눗셈의 나머지 같은 것이 없으면 건축은 재미가 없지. 사람을 매료시키거나 기억에 남는 것은 본래적이지 않은 부분일 경우가 많거든. 그 나눗셈의 나머지는 계산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야. 완성되고 나서 한참 지나야 알 수 있지” 180p


“노미야 하루에 씨의 별장 바로 앞 숲에는 놀랄 만큼 많은 빛의 알맹이가 소리 없이 날고 있었다” 246p


“겨울이 조금 더 기다려줬으면 좋겠어. 올가을은 유난히 예쁘니까” 355p


글로 모두 담을 수 없을 만큼 이 소설의 전체와 문장은 우리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하다. 지금 누군가에게 소설 한 권을 추천해줘야 한다면, 바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일 것이다. 그만큼 완벽하고, 작가의 재능을 엿볼 수 있다. 마치 잔잔한 호수에 조그만 조약돌을 물수제비 하듯이, 유려하게 나아간다. 정말 멋진 책이다.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현대 문학 소설 중 최고라 꼽을 수 있는 소설들에 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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