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 - 섭식장애와 심리적 외상을 이겨낸,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힘
정예헌 지음 / 헤르츠나인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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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섭식장애와 심리적 외상을 이겨낸'이라고 적혀있다. 광고에도, 추천 글에도 그런 표현들이 있다. '당신은 이 표현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드는가?'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작가에게 던지고 싶은 첫 질문이다. 


나는 섭식장애을 잘 모른다. 어릴 때부터 우량아로 태어났고, 뭐든 잘 먹었다. 남들보다 항상 컸고, 학창시절 교복과 체육복은 항상 빵빵했다. 지금도 뭐 마찬가지지만. 지금은 어릴 때에 비해가리는 게 조금 많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잘 먹는다. 스트레스 받는다고 특히 많이 먹지도 않고 큰 시험을 앞두고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든지 하는 속설에도 둔감하여 언제든 잘 먹는다. 그래서 섭식장애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상태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의 내용과 시간적 흐름을 알려주고 있다. 각 부 안에서도 소제목이 있고 작가가 경험 그리고 그것을 심리학적 용어로 풀어놓으며 작가 나름의 첨언을 해 놓았다. 소설책도 좋아하고, 군더더기 없는 두괄식의 글도 좋아하는 나로서는 책을 읽기가 너무 편했다. '경험 뒤에 심리학적 용어를 설명하는 방식을 왜 취했나요?' 작가에게 궁금한 두 번째 질문이다. 


작가는 1부 첫 부분에서 구토의 경험과 함께 섭식장애에 대한 용어를 설명하고 이어서 대인기피, 신경성 폭식증, 다중충동성 등 자신의 경험과 연관 지어 섭식장애의 다양한 증상들도 설명해놓았다. 책을 읽는 동안은 작가의 경험에 집중하여 에세이처럼 읽었는데 다 읽고 다시 돌아와 차례부터 찬찬이 넘기니 에세이보다는 섭식장애와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에 대한 안내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면 바라보기, 감정을 기록하는 식단일기, 가족 관계 다시 보기' 등은 작가가 회복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섭식장애를 겪고 있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작가가 해 주고 싶은 말을 이런 방식을 취해 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2부 K편에서는 '더 이상 이런 사람들로 인해 상처받고 아파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고 의도를 밝혀 놓기까지 한다. 


작가의 이야기는 짧은 에피소드들도 분절되어 있지만 구토로부터 시작된 폭식의 시간들은 본인에게는 일상이며 끝날 것 같지 않은 지옥이었을 것 같다. 다행히도 작가는 이런 경험을 책으로 낼 만큼 치유되는 중이지만 섭식장애 뿐만 아니라 심리적, 정신 문제로 지금 이 순간도 고통을 겪고 있을 사람들이 연상되어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4부 마지막 부분에 작가와 엄마가 나누는 대화가 있다. 엄마는 작가에게 '다리가 이렇게 튼실해서 반바지는 어떻게 입느냐'고 말한다. 작가는 '지금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니 살이 찌거나 빠져도 몸매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 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은 부분이다. 이제 이렇게 엄마에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괜찮아졌구나. 책을 읽으면서 작가에게 동화되어 조마조마 했었는데 안심이 되었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에 이런 표현이 있다. '모든 인간은 제각각 삶의 추를 가슴에 달고 있다. 추의 무게도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이선준이 대물 김윤에게 해 주는 말인데 이 책을 읽다가 이 말이 떠올났다. 마음에서 오는 문제 역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강아지는 평생을 함께할 가족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무섭고 피하고 싶은 존재가 되기도 하듯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작용도 제각각이기에 그에 대해서는 경중을 논할 수 없다. 


작가는 이제 강박에서 벗어나 '나'답게 살고 있는 것 같다. 때때로 참을 수 없이 먹고 싶은 날에는 죄책감 없이 먹기도 한다지만. 2013년에 고2였으니 2023년, 지금은 27살(?) 즈음일 정예헌 씨. 지랄에 총량이 있을까. 하지만 지랄은 내게 찾아 올 때마다 항상 최대 크기로 찾아오는 것 같다. 이미 경험을 해본 지랄 역시 마찬가지다. 면역이 안 된다는 뜻이다. 물론 내 경험이다. 하지만 탄탄해진 자존감이 무기가 되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헌 씨! 아직 남은 꽃다운 20대, 그리고 앞으로 더 아름답게 펼쳐질 시간들에서 나를 사랑하며 신나게 누리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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