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르미날 1
에밀 졸라 지음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1993년 11월
평점 :
품절




1884년 광부 파업을 다룬 에밀 졸라의 소설. 절판된 지 오래 된 책인데, 서울대 앞 사회과학 서점 '그날이오면'에 갔다가 운좋게 1. 2권 다 있는 것을 보고 잽싸게 샀다. 간만에 읽은 소설이다. 에밀 졸라는 배경의 세부 묘사를 무척 중시하는데, 자꾸만 배경 묘사를 건너 뛰고 스토리 중심으로 읽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 그새 이렇게 척박해지다니...

10여 년 전에 영화를 봤는데, 책을 읽으니 아무래도 영화는 가위질을 많이 당한 느낌이다. 영화의 스틸컷이 책 앞부분에 들어가 있어서, 더욱 생생한 느낌이었다.

인상적인 부분이 많았지만, 의외로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에티엔이 사랑하는 여인(이라기보다는 소녀에 가까운 듯한) 카트린의 처지였다. 카트린은 에티엔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자신에게 적극적인 샤발을 받아들인다. 그녀가 샤발을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툭하면 카트린을 함부로 대하는 샤발이 마침내 그녀를 버리려 했을 때, 그녀가 느끼는 위기감을 묘사한 부분이 충격적이었다. 자신이 거리에서 성매매를 하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모습.

예전에 <여성, 이중의 굴레>(토니 클리프, 유월)를 읽을 때 자본주의 초기 영국의 황무지 개간자들과 초기 감리교도들의 성도덕의 한계를 다룬 부분이 무슨 뜻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즉, 효과적인 피임 방법과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성의 자유는 사실상 남성만을 위한 자유가 됐다." (이 책 정말 좋은 책이다.)

하여튼 에밀 졸라는 글을 기가 막히게 잘 쓴다. 번역도 훌륭하다. 사물에 대한 묘사는 손에 잡힐 듯 생생하고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도 빼어나다. 이렇게 가끔씩 그 명성이 검증된 소설을 하나씩 읽을 생각이다. 소설 읽기를 한 십수 년 정도 쉬었으니, 얼마나 무궁무진하겠는가. 행복한 건지, 한심한 건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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