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 라이프 스토리
칩 즈다스키 지음, 마크 배글리 그림 / 시공사(만화) / 2020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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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몇년동안 마블은 "새로운" 것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였어요. 올뉴 마블 나우! 올뉴올디퍼런트 마블! 프레쉬스타트 마블! 세상에 알았어 진정해! 어차피 항상 똑같은 캐릭터로 비슷한 거 내면서 뭘 그렇게 유난이야! 이렇게 시니컬한 생각이 들다가도 돌이켜보면 나름대로 캐릭터들에게 트위스트를 줘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 건 정말 좋았고 그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후한 점수 주는 편이에요. 하지만 그것도 5년쯤 지나니까 슬슬 지겨워지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예전을 그리워하게 되는 건 사실이더라고요. 최고의 튜닝은 순정이라고 했잖아요? 최근의 마블은 복고풍이 대세입니다.


그런 복고의 물결에 <스파이더맨: 라이프 스토리>만한 시리즈가 없어요. <피터 파커: 스펙타큘러 스파이더맨>의 칩 즈다스키가 쓰고, <얼티밋 스파이더맨>을 포함해서 80년대부터 꾸준하게 스파이디를 그려온 마크 배글리가 펜슬링을 맡은 이번 작품은 시대별로 피터 파커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코너스톤들을 하나씩 조명해보는 시간을 가져봐요.


즈다스키는 요즘 제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한명이에요. 사람이 진짜 웃긴데다가 글쓰기도 그림그리기도 참 잘하는 재능꾼이거든요. 이번 작품의 표지들은 즈다스키가 직접 그린 그림들. 정말 대박이죠ㅠㅠ 표지에 시대가 명시돼있지 않아도 딱 시대상을 알수있게끔요. 60년대는 베트남전쟁, 70년대는 호박폭탄과 디스코볼, 80년대는 크레이븐의 관짝과 냉전시대, 90년대는 클론사가로 대표되는 아이덴티티 크라이시스! 총 6부작으로 아직 2편의 시놉시스/표지는 공개되지 않았는데 정말 기대가 많습니다.


이슈 1편을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건 단순히 그 시절 이야기를 리패키지해서 내놓는 거에 그치지 않고, 아예 주인공 피터 파커를 그 시대에 맞춰서 나이까지 함께 핀포인트 잡아 확실하게 고정시켜서 등장시켰다는 거예요. 마블코믹스의 타임라인과 캐릭터의 나이는 오랫동안 쉬쉬하며 대충대충 때워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1940년대에 나찌에 대항해 싸웠던 캡틴 아메리카가 1960년대에 다시 등장해서 2019년인 지금까지 등장하고 있다는 건 캐릭터의 나이가 100살이 넘는다는 뜻인데, 책을 읽어보면 스티브 로저스는 나이를 단 1살도 먹지 않은 것처럼 탱탱하거든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딘가 이상하죠?


마블코믹스가 연재되는 우리 현실의 시간과 마블코믹스 세계관 속의 시간은 얼핏 보면 비슷한 듯해요. 1960년대 연재되던 책에서는 식당에서 돌돌 만 시가를 꼬나물며 타자기를 타닥타닥 치던 엑스트라들이 2010년대에 연재되는 책에서는 흡연구역에서 전자담배를 피며 스마트폰과 에어팟을 쓰곤 하지요. 마블코믹스 세계관은 분명 시간이 흘러 업데이트 됐습니다. 마블코믹스는 현실시간의 변화와 발전을 흡수했습니다. 하지만 시간흐름의 경과는 현실과 결코 동일하지 않아요. 만일 동일했다면 1962년에 고등학생 15세로 등장했던 피터 파커는 지금쯤 70살이 됐어야 합니다. 그에 반해 2010년대 피터 파커는 28살 청년으로 묘사되고 있어요. 정리하자면 마블코믹스 속의 시대상은 계속해서 바뀌지만 유독 캐릭터의 나이에 국한해서는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는 의미입니다. 마블코믹스를 비롯한 슈퍼히어로 장르는 기본적으로 캐릭터 장사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늘을 날으며 주먹질을 하는 자경단 활동은 신체적으로 가장 최전성기에 있는 젊은 청년이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 테니까요.


위의 설명이 일반적인 마블코믹스의 경우라면, <스파이더맨: 라이프 스토리>에서의 선택은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마블코믹스 세계관 속 시간을 우리가 사는 현실시간의 타임라인과 합치시켜서 피터 파커의 나이를 그대로 묘사하고 있어요. 1962년에 15살 고등학생이었던 피터 파커는 이 코믹스에서 자라나 1966년에 19세 대학교 신입생이에요. 리얼타임으로 나이를 먹는 게 허락된 상황! 그로 인해 피터 파커는 당대 또래 청년들이 하던 고민을 그대로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셈이죠. (그렇다고 원작 클래식 작품에서 그런 걸 아예 안 했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좀 더 현실성과 사실성이 높아졌다는 평을 남겨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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