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1
로렌 와이스버거 지음, 서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차라리 영화가 훨씬 나았다. 이 책을 사지않고 빌려 읽었다는 것에 좀 위안을 느낀다.

책을 읽을수록 누군지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작가에 대한 반감이 솟아 올랐다. 미란다의 사적인 부분 하나 하나까지 다 비웃으며, 미란다 남편의 주변 사람에 대한 친절도 "멍청한" 정도로 치부하고, 미란다의 남편에 대한 애정 표현마저 비웃는..

자신의 집안 내력과 정신과 의사인 아버지의 직업과 진찰실 인테리어의 세련됨에 긴긴 시간 필요 이상의 페이지를 낭비하고, 너무나 멋진 언니와 남자친구와 룸메이트는 마치 막 진열장에서 빠져 나온듯 현실감이 떨어지고, 유태인인 어머니가 명절에 주문하는 "항상 고급"인 음식을 먹으며 "일회용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는 그다지 진보적이지도 친 환경적이도 못한 삶을, 미국의 책임있고 진보적인 인텔리  가정을 대변하듯 써낸 그 허영심이 싫다.

패션을 광적으로 사랑하지도 않고, 미란다가 부하 직원을 마구 다루는 방식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가 미란다의 불우한 유태인 소녀에서 입지전적 인물이 된 과정을 태생이 나쁜 빈민가 출신임만을 강조하고, 평소 런웨이 사람들을 거식증이라 부르며 자신의 체중에 대한 자부심을 끝없이 되뇌이다가 미란다의 칼로리 과잉의 아침 식사를 "구역질" 나 하면서 길게 서술할때 느껴진 악의는 책을 덮고 싶게 만들었다.

왜 다른 여자가 밤에 자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것을 비웃는 건가? 만약 그녀가 남자였다면 아무 것도 이룬 것 없는 이 애송이가 그토록 상사에 반감을 가졌을까? 여자는 괴팍해지면 안되나? 자기 직업에 충실하기 위해서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세세한 부분까지 도움받으면 안되나? 만약 남자 상사였다면 사생활에 대한 심부름을 부탁받는 부분에 대해 과연 이 어리고 열등감에 사로잡힌 질투녀는 뭐라고 묘사했을까?

결정적으로 그녀는 겉으로 욕을 하던 뭘하던 미란다가 내민 당근을 감지덕지 받아 들였다. 친구가 식물 인간의 위험에 처했을 때도 분명히 가지 않겠다는 선택을 스스로 했다. 그녀가 미란다에게 반기를 든 순간은 미란다가 앤드레아에게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을 요구했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결국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내팽개진 신포도같은 상황. 나쁜 건 모두 미란다라는 설정은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나. 앤드레아는 한국 나이로 25세의 대졸 미국 여성이다!  

영화가 나았다. 패션을 우습게 아는 앤드레아였지만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친구와 더불어 즐거워했다. 미란다가 일상 생활에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패션이 어떻게 앤드레아가 입는 파란 스웨터까지 가게 되는가를 설명할 때, 그 분야가 어떤 것이든 자기 일에 최고가 되기 위해 보통 사람은 따를 수 없을만큼 노력했던 한 인간의 열정이 앤드레아에게 전해지며 서로가 한 걸음씩 다가서는 것이 좋았다. 그 장면을 읽고 싶어 책을 보았지만 산만한 구성에 끝없이 이어지는 차가운 작가의 시선에 책을 읽은 것을 후회했다.(비록 작가는 자신이 얼마나 인간적인지 보여주고 싶은 장치를 곳곳에 마련했음에도)  미란다가 작가의 말대로 프라다를 입은 악마라면, 다른 직원에게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는 이유로 점심 접시의 오물을 손톱으로 긁어내서 상을 차리면서도 자신은 바른 가치관을 가졌다고 끝없이 주장하는 작가는 속물처럼 보였다. 

다른 무엇보다 스타벅스 커피를 노숙자들에게 나눠주었던 이유 앞에서는 어이가 없어질 정도였다.  "더러운" 노숙자들에게 런웨이의 돈이 쓰여지는 것이 미란다에 대한 보복이라는 작가의 사고는, 작가가 아무리 "인간적인 척"하며 노숙자 개개인의 입맛에 맞는 커피를 배달했다 한들 용서하기 힘들었다. 과연 노숙자들이 그녀의 진정한 동기를 알고도 그 커피를 맛있게 받아 먹었을까? 누구보다 "더러웠기때문에" 매일 한 잔이 커피를 선물 받았다는 사실을 어느 누가 선의라고 해석할까? 노숙자들에게 그녀가 한 짓은 미란다가 책 두권의 분량 내내 앤드레아에게 했던 그 어떤 망나니짓보다 더 모욕적인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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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4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스타벅스 부분에서 어이 없더라는. 남의 돈-회삿돈으로 생색 내면서 미란다에 앙갚음 한다고 하고. 위선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