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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의 고독 - 시간과 자연을 걷는 일에 대하여
토르비에른 에켈룬 지음, 김병순 옮김 / 싱긋 / 2021년 5월
평점 :

"멀고도 긴 공간과 시간을 걸으면서 그것이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당신은 날마다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끊임없이 길을 걷고 걷는다. 당신은 신체 각 부위를 통과하는 정맥을 통해 혈맥의 박동을 느낀다. 당신의 몸은 자기 고유의 신체 리듬에 맞춰 조율된다. 당신은 당신 자신과 주변의 모든 것과 하나가 된다. <두 발의 고독> p.54"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고 나 자신으로 충만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그것은 바로 걷기의 순간이다. 어느 날 의식을 잃고 병원에서 깨어나 뇌전증 진단을 받게 된 저자는 퇴원 후 바로 자동차 열쇠를 모두 없애버리고 가야 할 곳이 있으면 모두 걸어서 다녔다고 한다. '길은 그렇게 그의 삶 속으로 다시 돌아갔'고 세상은 그에게 활짝 문을 열었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편리한 이동수단을 사용할 권리를 박탈당한 듯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자동차, 비행기 등의 편리한 이동수단에 올라서는 순간, 어쩌면 우리의 두 발은 고독할 기회를 잃는다. 우리는 두 발로 걷는 동시에 사유를 직조하고, 부표처럼 떠다니며 존재의 의미를 찾는 움직이는 존재다. 걷기, 사유, 유랑. 이 모든 욕망과 권리를 스스로 거세한 채 생기 없이 살아가는 우리에게, <두 발의 고독>은 길과 걷기에 대한 다양한 은유적이고 상징 정인 단어와 문장으로 철학적 사유의 기회들을 제공한다. 당신에게 길과 걷기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세상은 온통 무대고,
그 위의 모든 남녀는 그저 배우일 뿐이지.
그들은 다 저마다의 퇴장과 등장의 순간이 있고,
한 사람이 주어진 시간에 여러 가지 배역을 한다네.
<두 발의 고독> p.204 - 인용문"
돌아보면 프리드리히 니체, 찰스 다윈, 쇠렌 키르케고르, 버지니아 울프 등 '걷기'를 사랑한 많은 이들이 존재했다. 그보다 더 오래 전인 캐나다 뉴펀들랜드에 존재하는 대략 5억 6,500만 년 전 좌우로 꿈틀거리며 나아간 궤적이 걷기의 첫 모습일지도 모른다. 3억 9,700만 년 전 네발로 걷는 척추동물이 남긴 발자국, 150만 년 전의 호모 에렉투스, 100만 년 전의 호모안테세소르, 그리고 570만 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등(p.163) 아주 오래전 인류의 조상들이 발자국을 남긴 그 길 위에 우리는 생생한 발자국들을 남기고 있다. 새삼 걷기의 유구한 역사를 생각하니 마음이 웅장해진다.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걷고 있다는 사실, 그들이 남겼을 발자국 위에, 나는 발자국을 남기고 있고 미래의 누군가는 또다시 내 발자국이 만든 길 위에 서 있겠지.
"길은 인간이 걸어서 여행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길은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다. 길의 앞에는 여행의 목적지가 있지만, 뒤에는 최초로 그 길을 만든 사람들을 포함해서 우리보다 먼저 동일한 길을 걸었던 모든 이가 있다. 따라서 길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다. 그것은 노동과 삶, 탐험과 이주에 대한 이야기이며, 실타래에 감긴 실처럼 지구를 거미줄같이 복잡하게 둘러싸고 있는 망에 대한 수없이 많은 이야기다.<두 발의 고독> p.30"
<두 발의 고독>은 인류가 언제부터 걷기를 시작했고, 인간에게 걷기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돌아본다. 과거 자연의 풍경과 지리를 읽을 줄 아는 능력이 인간이 생존하는데 필수적이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과 GPS의 등장으로 그러한 것들은 이미 불필요한 능력이 되었다. 하지만 걷기의 시간과 공간은 인간에게 특별한 사유와 경험의 순간을 선물해준다.
<두 발의 고독>은 저자를 포함해 걷기를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소개한다. 1955년 5월 3일 일흔일곱 살의 생일을 맞은 에마 게이트우드가 그중 하나다. 충동적인 알코올 중독자인 주정뱅이 남편이 술집에서 난동을 부리다 총에 맞아 죽고 자식들이 독립해 떠난 뒤, 그녀는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어 보이는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황무지를 작은 숄더백 하나만 덜렁 매고서 완주에 성공한다. 과연 그녀에게 걷기란 어떤 의미였을까? 끝이 없어 보이는 길을 따라 끝없이 걷는 그녀의 마음을, 나는 어쩐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걷다 보면 나 자신에게 '나'라는 존재를 증명해 보일 수 있을 것 같은 그 마음을 알기에.
나는 '경단녀'이자 세 아이를 키우는 전업맘이다. 워킹맘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자 티끌보다 더 작은 내 존재를 증명해주던 끈이 사라진 느낌이다. 그저 느낌일 뿐이라고 치부하기엔 내 존재가 바스러져 아득해지는 느낌이 너무도 명확했다. 내 존재가 흩뿌려지고 투명해질 때마다 나도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서 길을 따라나섰다. 땅을 딛고 서서 걷는 순간, 나는 존재했다. <두 발의 고독>을 읽는 내내 낯익은 감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길 위에 서면 잊었던 감각과 사유의 순간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 책은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