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 지음, 이수영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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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중산층이 되고 싶은 가난한 지반, 영화 배우를 꿈꾸는 히즈라 러블리, 그리고 평범한 소시민 체육선생. 이 소설은 기차 테러 사건을 배경으로 서로 의지하며 도움을 주던 약자들이 어떻게 욕망에 눈 뜨게 되고, 또 그들의 연대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보여준다.



경찰들은 우리의 가난한 무기를 보고 비웃었다. 벨트 위로 늘어진 그들의 배가 흔들렸다. 경찰들은 조직적으로 대나무 막대를 휘두르며 우리의 석면과 방수표 지붕을 끌어내리느라 용을 쓰며 기합을 내질렀다. (중략) 집들은 곧 태양에 노출되었고 석회 벽과 갈라진 귀퉁이만 남았다. 우리가 여기에서 산 적조차 없는 것 같았다.

집들이 너무나 쉽게 부서져 깜짝 놀랐다. 이렇게 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콜카타의 세 사람> p.102


지반은 가난한 빈민가에 살았다. 어느 회사는 그들이 살고 있던 땅에서 석탄을 캐내기 위해 공권력을 투입했고 경찰들은 가난한 서민들의 집을 모조리 부쉈다. '깜빡이는 석유 등잔 아래에서 밥을 먹던 부엌, 서로 머리를 빗겨주던 방의 지붕이 모두 없어져버렸고' 아버지의 릭샤도 부숴졌다. 그들은 집을 잃었고 쓰레기장에 바로 붙어 있는 또 다른 빈민가로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지반은 집안의 생계를 잇기 위해 진학을 포기했고 쇼핑몰에 취업했다.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했고, 스마트폰을 사고 옷을 샀다. 그저 그뿐이었다.



지반이 사는 동네 기차역에 기차가 잠시 정차했고, 누군가 기차에 횃불을 던졌다. 백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역시 정부와 경찰은 무능함과 무신경함으로 일관했다. 지반은 이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한 여자의 울분이 담긴 영상을 페이스북에 공유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자 홧김에 문장 몇개를 써올린다."경찰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돕지 않는다면, 죽는 모습을 그냥 지켜만 본다면, 정부 역시 테러리스트라는 뜻 아닌가요?"( 『콜카타의 세 사람』 p.13) 이튿 날, 지반은 바로 경찰에 연행되었다. 테러를 저질렀다는 죄목으로 말이다.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지반과 나 둘 다 벌레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날개가 뜯겨버린 메뚜기일 뿐이다. 꼬리가 뽑힌 도마뱀일 뿐이다. 지반에게 죄가 없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내게 재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콜카타의 세 사람> p.263


영화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히즈라인 러블리. 그는 선량한 지반이 테러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굳게 믿는다. 가난한 자신을 위해 무료로 영어 과외를 해주고 영어 교과서를 가져다 주었을만큼 선한 지반이 대체 왜 테러를 저지른단 말인가? 그는 지반을 위해 용기를 내 재판에 서서 그녀의 무고함을 증언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가 연기 연습을 위해 촬영해둔 짧은 영상들이 인터넷 상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다. 오래도록 꿈꾸던 영화 배우가 되기 위한 길이 열리는가 싶더니, 대중들은 그에게 테러리스트로 지목당한 지반에 대해 다시 묻는다.



"당신이 그 정치인들을 위해서 뭔가 할 때, 기술자가 필요한 그들을 도와줄 때, 기분이 좋았겠찌.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대에 올랐다니 VIP가 된 기분이었을 거야. 하지만 그런 사람들과 엮이면?"

<콜카타의 세 사람>


체육 선생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정당의 집회에 참석하게 된다. 달콤한 권력의 힘을 맛보게 되고 이내 정당을 위해 불법적인 일도 서슴치 않는다. 결국 요직에까지 올라간 체육 선생, 그는 한때 자신의 제자였던 지반을 제거하라는 당 지도자의 요구에 가차없이 실행에 옮긴다.



지반의 철없는 농담으로 빚어진 소동은 끝내는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되었다. 가난한 무슬림 여성인 지반은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할 힘이 없었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 약자들의 연대는 각자의 욕망 앞에 힘없이 무너졌다. 계급과 인종에 대한 편견, 부패한 정치세력과 무능한 공권력, 무언가 먹잇감이 필요한 성난 군중들에 의해 결국 억울하게 스러진 약자의 모습,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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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 지음, 이수영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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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이야기꾼을 하나 더 알게 되었네요!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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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축제의 땅 그리스 문명 기행
김헌 지음 / 아카넷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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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길과 바닷길이 모두 막혀 여행을 떠날래야 떠날 수 없는 시국이지만 마음에 드는 책 한 권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로든 상상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이번 추석 연휴에는 <신화와 축제의 땅 그리스 문명 기행>와 지중해로 인문 기행을 떠나 보는 건 어떨까? tvN <벌거벗은 세계사> 및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강의를 선보였던 김헌 교수가 오래도록 천착해왔던 주제인 그리스 신화와 역사 그리고 그곳에서 개최되었던 축제까지, 한 번 펼치면 빠져들어 헤어나올 수 없는 이야기들이 가득한 책이다.



5월에서 6월로 넘어가던 그리스는 눈부시게 찬란했다. 눈 시리게 파란 하늘에 태양이 작열했고, 햇살의 날카로운 창끝이 내리 꽂히는 척박한 땅은 누런 피부를 드러내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하늘만큼 푸르른 에게해는 크루즈가 쟁기질을 하며 묵직하게 나아갈 때마다 구름처럼 하얀 포말을 거칠게 뿜어냈다. 강렬한 햇빛과 상쾌한 바람이 온몸의 감각을 싱싱하게 일깨울 때, 하늘과 땅과 바다가 뚜렷한 색채로 맞닿아 어우러져 세상은 더욱더 맑게 돋보였다.

<신화와 축제의 땅 그리스 문명 기행> p.10


이책은 눈부시게 찬란한 지중해를 바라보면서 시작된다. 퓌티아, 이스트미아, 네메이아 제전을 비롯한 4대 '범 그리스 제전'이 개최되었던 그리스 본토에서 시작해 에게해의 델로스, 크레타, 산토리니, 아테네 등과 로마의 건국 신화의 흔적까지 따라간다. 힘차게 역동하는 자연과 폐허처럼 잔해만 남은 신전들의 터, 그 선명한 대비를 직접 눈으로 바라보는 느낌은 어떨까? 비현실적인 균열이 위화감이 없이 다가오는 이유는 이책의 아름답고 유려한 문체 덕분일테다. '크루즈가 쟁기질을 하며 묵직하게 나아가는 모습'이라는 이 책의 문구에 과거 호메로스의 '불모의 바다를 쟁기질하며 달리는 것'이라는 문구가 겹쳐진다. 아름다운 지중해와 그 곁에 남겨진 신화와 문명의 잔해들, 그 틈을 꽉 차게 메꿔 주는 <신화와 축제의 땅 그리스 문명 기행>의 인문학적 통찰과 아름다운 언어들 덕분에, 나는 반짝이는 지중해 곁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여행의 시작은 퓌티아, 이스트미아, 네메이아 제전을 비롯한 4대 '범 그리스 제전'의 개최지를 찾는 것이었다. 현대 올림픽 경기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의 올륌피아 제전은 '모든 그리스인들이 모이는' 축제였다. 올륌피아 제전이 열리는 기간동안 전쟁도 멈추고 한곳에 모여 평화와 공존을 기원하며 축제를 즐겼는데 다른 도시들도 비슷한 축제를 만들었다고 한다.



<신화와 축제의 땅 그리스 문명 기행>은 각 지역의 제전이 열렸던 신전들의 터, 과거 스타디온을 돌아보며 선수들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트로이아 전쟁의 영웅 오뒷세우스의 모습이 담긴 튀니지 국립박물관의 모자이크 작품에 얽힌 이야기와 아가멤논의 비극적 이야기가 상연되던 디오뉘소스 극장도 소개한다.



오뒷세우스가 트로이아 전쟁 후 여신 칼륍소에게 사로잡혀 7년 동안 갇혀 있었던 고조섬의 해안,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한 건축물이었지만 이제 잔해만 남은 아르테미스 신전, 시간의 신 크로노스가 자식이 태어나는 족족 잡아먹자 아들 제우스 대신 아이라며 강보에 싸서 주었다는 '옴팔로스'라는 이름의 돌 등 각 축제의 기원과 그에 얽힌 역사, 신화 이야기, 그리고 적재적소로 실은 삽화 보는 재미에 빠져 당장이라도 그리스로 떠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내 인생 버킷 리스트에 하나 더 추가되었다. <신화와 축제의 땅 그리스 문명 기행>이 소개하는 루트대로 꼭 한 번 지중해 인문 기행을 떠나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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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축제의 땅 그리스 문명 기행
김헌 지음 / 아카넷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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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필독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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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 지음, 이수영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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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중산층이 되고 싶은 가난한 지반, 영화 배우를 꿈꾸는 히즈라 러블리, 그리고 평범한 소시민 체육선생. 이 소설은 기차 테러 사건을 배경으로 서로 의지하며 도움을 주던 약자들이 어떻게 욕망에 눈 뜨게 되고, 또 그들의 연대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보여준다.



경찰들은 우리의 가난한 무기를 보고 비웃었다. 벨트 위로 늘어진 그들의 배가 흔들렸다. 경찰들은 조직적으로 대나무 막대를 휘두르며 우리의 석면과 방수표 지붕을 끌어내리느라 용을 쓰며 기합을 내질렀다. (중략) 집들은 곧 태양에 노출되었고 석회 벽과 갈라진 귀퉁이만 남았다. 우리가 여기에서 산 적조차 없는 것 같았다.

집들이 너무나 쉽게 부서져 깜짝 놀랐다. 이렇게 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콜카타의 세 사람> p.102


지반은 가난한 빈민가에 살았다. 어느 회사는 그들이 살고 있던 땅에서 석탄을 캐내기 위해 공권력을 투입했고 경찰들은 가난한 서민들의 집을 모조리 부쉈다. '깜빡이는 석유 등잔 아래에서 밥을 먹던 부엌, 서로 머리를 빗겨주던 방의 지붕이 모두 없어져버렸고' 아버지의 릭샤도 부숴졌다. 그들은 집을 잃었고 쓰레기장에 바로 붙어 있는 또 다른 빈민가로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지반은 집안의 생계를 잇기 위해 진학을 포기했고 쇼핑몰에 취업했다.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했고, 스마트폰을 사고 옷을 샀다. 그저 그뿐이었다.



지반이 사는 동네 기차역에 기차가 잠시 정차했고, 누군가 기차에 횃불을 던졌다. 백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역시 정부와 경찰은 무능함과 무신경함으로 일관했다. 지반은 이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한 여자의 울분이 담긴 영상을 페이스북에 공유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자 홧김에 문장 몇개를 써올린다."경찰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돕지 않는다면, 죽는 모습을 그냥 지켜만 본다면, 정부 역시 테러리스트라는 뜻 아닌가요?"( 『콜카타의 세 사람』 p.13) 이튿 날, 지반은 바로 경찰에 연행되었다. 테러를 저질렀다는 죄목으로 말이다.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지반과 나 둘 다 벌레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날개가 뜯겨버린 메뚜기일 뿐이다. 꼬리가 뽑힌 도마뱀일 뿐이다. 지반에게 죄가 없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내게 재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콜카타의 세 사람> p.263


영화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히즈라인 러블리. 그는 선량한 지반이 테러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굳게 믿는다. 가난한 자신을 위해 무료로 영어 과외를 해주고 영어 교과서를 가져다 주었을만큼 선한 지반이 대체 왜 테러를 저지른단 말인가? 그는 지반을 위해 용기를 내 재판에 서서 그녀의 무고함을 증언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가 연기 연습을 위해 촬영해둔 짧은 영상들이 인터넷 상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다. 오래도록 꿈꾸던 영화 배우가 되기 위한 길이 열리는가 싶더니, 대중들은 그에게 테러리스트로 지목당한 지반에 대해 다시 묻는다.



"당신이 그 정치인들을 위해서 뭔가 할 때, 기술자가 필요한 그들을 도와줄 때, 기분이 좋았겠찌.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대에 올랐다니 VIP가 된 기분이었을 거야. 하지만 그런 사람들과 엮이면?"

<콜카타의 세 사람>


체육 선생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정당의 집회에 참석하게 된다. 달콤한 권력의 힘을 맛보게 되고 이내 정당을 위해 불법적인 일도 서슴치 않는다. 결국 요직에까지 올라간 체육 선생, 그는 한때 자신의 제자였던 지반을 제거하라는 당 지도자의 요구에 가차없이 실행에 옮긴다.



지반의 철없는 농담으로 빚어진 소동은 끝내는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되었다. 가난한 무슬림 여성인 지반은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할 힘이 없었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 약자들의 연대는 각자의 욕망 앞에 힘없이 무너졌다. 계급과 인종에 대한 편견, 부패한 정치세력과 무능한 공권력, 무언가 먹잇감이 필요한 성난 군중들에 의해 결국 억울하게 스러진 약자의 모습,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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