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커피 한잔 - 문학×커피 더 깊고 진한 일상의 맛
권영민 지음 / &(앤드) / 2022년 1월
평점 :
'커피 한잔'에 이렇게 깊고 풍부한 이야기가 담겼다니. 캡슐 에스프레소 머신 등 가정용 커피 메이커의 보급으로 누구나 손쉽게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인지 에세이 <커피 한잔>를 막 펼쳤을 때는 언제든 마실 수 있는 커피에 대한 마음, 딱 그 정도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커피가 박래품으로 우리나라에 유입된 당시의 사회의 모습, 역사적 사건, 또 박태원, 이상, 김동리의 문학 작품 속에서의 수행한 역할 등 깊고도 다양하게 얽혀있는 커피는 문화의 한 자락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우리말에는 '커피'라는 말이 없었다. 당시에 커피는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그런 말이 생길 리가 없다. 커피를 본 사람도 없고 맛본 사람도 없으니 그게 당연한 일이다. 사물의 이름이라는 것은 경험 속에서 만들어진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것은 그저 무지의 상태가 되기 마련이다.
신간 도서 / 에세이추천 <커피 한잔> p.14
'커피'라는 단어는 언제부터 쓰였을까?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우리말에는 '커피'라는 말이 없었다고 한다. 1895년 간행된 유길준의 <서유견문>이라는 책에서 서양 사람들이 숭늉이나 냉수처럼 마시는 음료로 커피를 '가비'라는 말로 소개했다. 커피가 대중의 기호품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10년 전후로 을사조약 이후 일본인들이 밀려오면서였는데 당시 서울의 명동 일대에 생긴 당시의 커피숍인 '끽다점'이 커피 유행 및 대중화의 중심에 있었다.
다방 제비는 한낱 서생에 불과한 이상의 삶을 파탄으로 내몰았지만, 이 시련의 공간이 그의 새로운 문학적 산실이 되었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로니컬하다. 그는 다방 제비에서 자연스럽게 당대의 소설가 박태원과 만났고,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등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연작시 <오감도>를 발표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식민지 시대에 가장 빛나는 한 사람의 시인으로 내세울 수 있게 된다.
신간 도서 / 에세이추천 <커피 한잔> p.91
연작시 <오감도>로 잘 알려진 천재 시인 이상, 그는 스물넷이 되던 해 폐결핵으로 실직하게 되었다. 요양차 방문한 황해도의 배천온천에서 기생 금홍을 만나 동거를 시작하게 되고 그녀를 서울로 불러올리기 위해 집문서를 저당잡아 제비다방을 냈다고 한다. 1933년 6월, 종로 2가의 반도광무소 건물 아래층을 세내어 손수 실내장식을 꾸며 간판을 내걸었다. 당시 다방 제비는 경성에서 몇 되지 않는 다방 가운데 하나로 세간의 관심을 모았지만, 채 2년이 되지 않아 운영에 실패했고 금홍과도 결별하게 된다. 하지만 이상이 다방 제비에서 자신의 젊음을 탕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다방 제비는 1930년대 중반을 살았던 경성의 문학인들에게 하나의 작은 '살롱'이 되었고, 여기에 모여드는 문인들과의 교류가 가능해지면서 당시 새로운 문학 동인 구인회의 구성원들과 교류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되었으니 말이다.
광복동 네거리의 다방 밀다원은 가난한 화가 이중섭이 고통 속에서도 미술에 대한 꿈을 지켜냈던 생의 공간이었다. 피난민 대열 속에 끼어 부산으로 내려온 이중섭은 밀다원에서 화가 김환기, 백영수, 장욱진 등과 조우했다. 그들은 고통의 삶 속에서도 화가로서의 자기 존재를 버리지 않았다. 어두운 다방 구석에 둘러앉아 예술을 논하고 창작욕을 불태우면서 서로를 격려했다. 이중섭의 유명한 은박지 그림들은 이곳 밀다원의 어두운 구석에서 그려졌다.
신간도서 추천 / 에세이추천 <커피 한잔> p.132
밀다원은 작은 공간이지만 한 시대를 오롯이 담아내고 시대의 삶을 그대로 표상한다. 1950년 6.25 전쟁 당시 부산 광복동 네거리에서 시청 쪽으로 향한 길가 2층 건물에 작은 다방 '밀다원'이 있었다. 당시 부산은 20만 정도의 인구가 모여 살던 도시였는데 이곳으로 백만이 넘는 피난민들이 밀려들었다. 전쟁을 피해서 밀려 내려온 사람들은 궁핍한 현실을 피하려고 밀다원으로 모여들었고, 그곳에서 잠시나마 삶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고 한다.
가난한 화가 이중섭 역시 밀다원에서 자신의 꿈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림물감도 캔버스도 구할 수 없던 터라 그는 다방 구석에 앉아 담뱃감 속의 작은 포장용 은박지에 그림을 그리곤 했다. 송곳이나 나무 펜으로 다란한 가족의 모습을 담았는데 그의 은박지 그림 3점은 현재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그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은 가난에 지친 삶과 고통을 밀다원에서 털어버리고 새로운 예술의 꿈을 얻었다. '밀다원'은 이름 그대로 '꿀물이 흐르는 찻집'이 되었다.(p.134)
커피 한잔에 담긴 다양한 역사와 문학 이야기를 알고 나니 한층 더 커피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커피에 대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문학과 역사, 그 이야기 속으로 빠져보시길,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