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의 온실>과 <파견자들>을 통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김초엽 작가가 3년 만에 장편소설 <태양 아래 올리브>로 돌아왔다. 이번 작품은 믿음과 의심,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따라 질주하는 SF 로드무비다!!
소설은 신앙과 과학처럼 쉽게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두 세계의 충돌에서 출발한다. 여기에 수녀와 과학 유튜버가 동행하는 "버디 로드무비"라는 흥미롭고 경쾌한 형식을 더했다. 전작에서 인간의 조건과 낯선 존재와의 공존을 탐구해 온 작가는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소설의 배경은 기후 재난이 일상이 된 근미래다. 최고기온이 40도를 훌쩍 넘어서고 한국에서도 은백색 올리브나무가 자라나는 기이한 시대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재난 현장을 누비며 헌신적으로 타인을 돕는 "푸른아녜스 수녀회"의 수녀 이레와 과학기술 정책 매거진의 에디터이자 익명 과학 채널 "미놋"을 운영하는 솔민이 있다. 이레가 맹목적으로 보일 만큼 타인을 돕는 인물이라면, 솔민은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과학의 이름으로 맹신과 허위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인물이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두 사람은 한때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였지만,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채 헤어졌다. 그러나 8년 뒤 이레의 과거와 얽힌 수상한 사건을 계기로 재회해 함께 길을 떠난다. 한국에서 시작된 여정은 베트남과 라오스를 거쳐 메콩강과 태국 북부까지 이어진다. 미행과 도주가 거듭되는 가운데 감춰져 있던 단서가 하나씩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점차 속도를 높인다.
기후 변화로 원래 자라지 않던 곳에 뿌리를 내린 올리브를 보며 이레는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자란 올리브"를 떠올린다. 그러나 태어난 장소나 존재하는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존재에게 과연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무는 제 자리를 선택한 적이 없다. 이미 그곳에 뿌리를 내렸고, 주어진 자리에서 살아갈 뿐이다.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레와 준의 존재를 거쳐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조건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확장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이 소설이 명확한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끝까지 질문을 이어간다는 데 있다. 타인의 마음과 고통은 완벽하게 증명할 수도,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 해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존재를 믿기로 선택할 수 있다. <태양 아래 올리브>는 바로 그 선택을 통해 믿음의 본질을 묻는다.
그러나 여정의 끝에서 기다리는 것은 모든 의문을 말끔히 해소하는 진상이 아니다. 의식은 자신을 이루는 물질에서 벗어날 수 없고 시간을 뛰어넘을 수도 없다. 먼 미래에 도달하려면 그만큼의 시간을 온전히 살아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쌓인 기억과 감각 역시 그대로 복제할 수 없다. 그래서 "생은 단 한 번뿐인 연산이다"라는 문장이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결국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완벽하게 증명된 영혼이 아니라, 느끼고 기억하며 고통받는 한 존재의 목소리다.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끝내 믿기로 선택하는 것. 이 소설에서 믿음은 불확실한 것을 사실로 단정하는 태도라기보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기로 하는 선택에 가깝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서로의 곁에 남을 수 있는가. 결국 <태양 아래 올리브>가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은 여기에 닿는다. 주제는 묵직하지만 그 질문을 따라가는 독서의 리듬은 끝까지 경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