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 오늘의 젊은 작가 40
정대건 지음 / 민음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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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은 한 소년과 자꾸만 눈이 마주쳤다. 진평강에 열을 식히러 온 사람들 사이에서 한눈에 도담의 눈길을 끄는 소년이 있었다. 낯선 얼굴. 하얀 피부에 잡티도 없이 매끈한 몸. 세상의 모든 것에 호기심을 품은 듯한 크고 맑은 눈동자. 도담은 소년을 빤히 바라봤다. 시선을 느꼈는지 소년도 도담을 물끄러미 건너다봤다. 무안해진 도담은 뭘 보냐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눈싸움에서 진 소년은 도망치듯 물로 들어가 버렸다.

p.15


소설의 시작은 한 편의 눈부신 청춘물처럼 펼쳐진다. 수영에 자신 있던 도담은 진평강에서 물에 빠질 위기에 처한 낯선 소년 해솔을 구하기 위해 거침없이 뛰어든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우연을 계기로 점차 비밀 없는 관계로 발전한다. 그러나 잔잔하고 평화로울 것만 같던 첫사랑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발생한 균열로 인해 산산조각 난다. 해솔의 엄마와 도담의 아빠 사이에 드러난 불륜 정황, 그리고 이를 함께 추적하던 어느 밤 폭우로 물이 불어난 계곡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고는 두 아이의 삶을 완전히 뒤흔든다. 오직 서로가 전부였던 두 사람은 이 예기치 못한 급류에 휩쓸려 전혀 다른 궤도로 튕겨 나간다.




 도담에게 사랑은 급류와 같은 위험한 이름이었다. 휩쓸려 버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 발가벗은 시체로 떠오르는 것, 다슬기가 온몸을 뒤덮는 것이다. 더는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왜 사랑에 '빠진다'고 하는 걸까. 물에 빠지다. 늪에 빠지다. 함정에 빠지다. 절망에 빠지다. 빠진다는 건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p.100


도담과 해솔은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였지만, 동시에 가장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진 사건은 단순한 비극에 그치지 않고 이후의 삶 전체를 바꾸어 놓는 거대한 물살이 된다. 도담은 사랑을 믿지 못하는 사람으로 변해 가고, 해솔은 죄책감과 상실감 속에서 계속 흔들린다. 두 사람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지만, 재회가 곧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도담에게 사랑은 급류와 같은 위험한 이름이었다. 휩쓸려 버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 발가벗은 시체로 떠오르는 것, 다슬기가 온몸을 뒤덮는 것이다. 더는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p.130



두 사람은 다시 연인이 되지만, 이들의 사랑은 여전히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그것이 죄책감인지 진정한 사랑인지 분명히 구분되지 않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그날 밤의 기억이 반복해서 떠오른다. 



소설은 같은 상처를 지닌 두 사람이 그 상처를 어떻게 다르게 통과하는지, 그리고 같은 자리에 다시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헤엄이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급류>가 그려 내는 사랑은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한 하나의 결정체가 아니라, 오랜 시간 여러 감정이 쌓여 형성된 퇴적암에 가깝다. 배신감, 미안함, 원망, 끝없는 애처로움이 오랜 시간 층층이 쌓여 만들어진 감정 역시 훌륭하고 단단한 사랑이 될 수 있음을 이 소설은 증명해 낸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에서 지옥 같았던 과거를 떠올리면서도 끝내 손을 놓지 않고, 기꺼이 상대의 지옥을 함께 짊어지기로 선택한다.



해솔과 얽힌 사연 때문에 연상되는 슬픔. 같은 상처를 가진 동질감. 연민이다. 우리가 보통 지독한 인연은 아니지. 해솔과의 재회에 운명 같은 단어가 연상되는 건 우연에도 인과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의 습성 때문이다. 추억 때문이다. 좋았던 날들에 대한 반가움과 지나가 버린 한때에 대한 슬픔일 수도. 이성에 대한 열정? 호르몬 작용은 진작 끝났다. 소식이 궁금하고 그리워하는 마음. 걱정하고 애타게 보고 싶은 마음. 꽉 끌어안고 안기고 싶은 마음. 그런 때도 분명히 있었다. 마음의 불씨는 전부 사그라져 버렸다. 완전한 전소. 남은 거라고는 그을린 시커먼 자국과 탄내 가득한 폐허.

p.226



<급류> 속 사랑은 순수하지도, 완벽하지도 않다. 오히려 의심과 원망, 죄책감과 연민이 뒤섞여 있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마음이 언제나 깨끗한 하나의 감정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은 복잡한 마음들을 억지로 정리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이라는 단어 안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함께 흐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완전히 괜찮아지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과거의 물살에 휩쓸렸던 사람도 다시 누군가의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랑이 반드시 구원이 아니더라도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조용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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