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가라앉지 마 - 삶의 기억과 사라짐, 버팀에 대하여
나이젤 베인스 지음, 황유원 옮김 / 싱긋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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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가라앉지 마>는 한 사람이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책이다. 영국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 북디자이너인 나이젤 베인스가 치매에 걸린 엄마를 약 2년 동안 돌보면서 지나왔던 시간들의 고통과 상실을 글과 그림으로 오롯이 담아냈다.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것이기 동시에, 자신을 오래도록 놓지 않는 상실과 고통을 떨쳐내려는 시도이기도 했을 테다. 





2014년 겨울, 저자는 엄마가 택시에서 내리다가 엉덩이뼈를 다쳤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연이어 들려온 어머니의 치매 판정, 호전되는 듯하다가 다시 깊어지는 엄마의 증세를 보며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전혀 없었다. 노동자 계층으로 평생 살아온 그의 부모님에게 노후를 위한 대비는 전무했으며 그 부담은 그대로 나이젤에게 전가됐다. 엄마의 병환이 깊어지고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실체가 확실해지는 것은 경제적 부담이었다. 엄마의 세계가 무너져내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밀린 청구서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다. 국민건강보험과 사회복지 사이의 거대한 틈, 그 틈은 개인에게 청구되는 어마어마한 치매에 대한 비용이었다.



국민건강보험이 물에 빠진 사람을 살려주고는 구명 튜브만을 던져준 채 혼자서 해안까지 헤엄쳐 가라고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심지어 해안에 있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링컨셔의 성인사회복지센터 책임자에게 장문의 편지까지 써야 했다.

나는 넓은 바다에 이렇게 크고 깊은 틈이 존재하는지 몰랐다.

 p.49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정신이 잠깐 돌아오는 듯했던 그 다음날 엄마가 깨어나질 않았다는 병원의 전화를 받는다. 심폐소생술을 비롯해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했지만 엄마를 깨우는 데 실패했다는 전화를 받고 나서, 나이젤은 차를 한 잔 마셨고 먹을 걸 사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우습게도 말이다.



살면서 딱 한 번만 하게 되는 말이 있다. 엄마가 돌아가셨다. 나는 차 한 잔을 마신다. 바깥에서는 사람들이 출근을 하고 있다. 오늘은 먹을 걸 사야 한다. 적당히 우스꽝스러운 기분이 든다.

p.161



엄마를 잃은 나이젤에게 기이하고도 다양한 감정들이 물밀려 왔다. 맨 먼저 든 감정은 안도감, 그리고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상실감. 그런 것들을 떨쳐내기 위해 나이젤은 이 책을 써야만 했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미소를 띤 채 물 위에 떠 있는, 지독하게 그를 괴롭히던 고통과 상실에서 벗어난 나이젤을 발견하게 된다. 180여 남짓의 짧은 분량이지만 종이 한 장이,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게  이토록 어렵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상실이 주는 고통 앞에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깊은 울림을 가진 이 책은 상실에 대해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모은 것이다. 깊고, 섬세하고, 따스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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