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무라세 다케시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렇게까지 슬플 줄은 몰랐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고 나서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못다 한 말을 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 간절히 바라던 소망이 실현되는 것은 로맨스 판타지물의 클리셰 중의 클리셰가 되어 버렸으니까. 그런 클리셰는 예상 가능한 정도의 감동과 눈물을 주기 때문에 소설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를 읽고 나서도 어느 정도만 슬퍼지고 말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열차의 탈선 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네 사람이 절절하게 그리워하다 결국 그 소망이 이루어지는 기적 같은 이야기를 펼쳐놓는 슬픈 소설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을 소개한다. 판타지소설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에는 네 가지 사연이 담겨 있다. 곧 결혼을 앞두고 약혼자를 잃은 여자, 자신을 끔찍하게 사랑했던 아버지를 잃은 아들, 생의 나락에서 자신을 구원해 준 짝사랑했던 여자를 잃은 남학생, 그리고 마지막으로 탈선한 열차를 몰았던 남편을 잃은 아내가 차례로 등장해 눈물샘을 자극한다. (ㅜㅜ)
어느 날, 도힌철도 급행열차 한 대가 탈선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승객 127명 중 68명이 사망했고 셀 수 없이 많은 부상자가 나왔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 믿을 수 없는 사고 속에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삶은 매정하게도 계속 이어져나가야 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을 즈음 사람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사고가 난 니시유이가하마 역에 가면 유령이 나타나 사고 날 그날 당일의 열차에 탈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소문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소문임을 알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역을 찾는다. 그 역에 도착하자마자 홀연히 나타나는 유령 유키호, 소녀는 열차에 올라 반드시 지켜야 하는 4가지 규칙을 알려준다. 죽은 피해자가 승차했던 역에서만 열차를 탈 수 있다는 것, 피해자에게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려서는 안 된다는 것, 열차가 니시유이가하마 역을 통과하기 전에 다른 역에서 내려야 한다는 것, 죽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현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할 것. 이 네 가지 규칙을 들었지만 죽은 이를 만나기 위해 모두 열차에 탑승한다. 그리고 엄청난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동 스토리가 시작된다.
"내가 너한테 바라는 건 단 하나뿐이야."
"..."
"네가 행복하게 사는 것. 구로랑 신나게 놀고, 돈가스 덮밥을 맛있게 먹으면서. 난 네가 평생 웃으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할머니가 돼서도. 평생, 영원히."
p.88
첫 번째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히구치의 이야기다. 결혼식을 몇 달 앞두고 결혼의 단꿈을 꾸던 히구치는 약혼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를 만나기 위해 니시유이가하마 역을 찾게 되고 약혼자를 만나 그의 죽음을 알리고 열차에서 내리도록 강요한다. 그 순간 열차는 사라져버린다. 히구치는 다시 열차에 탑승하고 약혼자와 함께 세상을 떠나려고 마음먹는다. 과연 히구치는 열차가 니시유이가하마 역에 도착하고 연인과 함께 저세상으로 떠날 것인가!
아버지 장례식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조문객이 밀려들었다. 사람들은 잠든 아버지 앞에 줄지어 서서 "고마웠습니다."라며 인사를 올렸다.
나는 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속으로 내내 비웃었다. 하지만 내가 틀렸다.
시선 끄트머리에서 웃자란 풀이 바람에 몸을 떨었다. 어릴 때 이 공터에서 아버지와 자전거 타는 연습을 했었다. 아무리 연습해도 제대로 페달을 밟지 못하는 나를 위해 아버지가 줄곧 따라왔었다.
비가 내리던 날도.
출근했다가 녹초가 돼서 돌아온 날에도.
나는 아버지에게 사죄하고 싶었다.
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사죄해야 한다.
p.147
평생 노동자인 아버지를 업신여기고 무시해왔던 아들 유이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깊은 사랑을 뒤늦게 깨닫는다.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해왔던 일들을 하나둘 깨닫고 나서 깊이 후회한다. 아버지에게 꼭 사죄해야 한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사죄해야 한다며 그 역시 열차에 탑승한다.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에 실린 네 가지 이야기들은 모두 우리가 '아는 맛'스러운 이야기들이다. 어딘가 낯익은 스토리들은 어디선가 읽어봄직한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들은 읽었다 하면 눈물이 나고야 만다고, 슬픈 이야기인 줄 알면서도 읽게 되고 또 눈물을 펑펑 쏟는다. 말장난 같지만, 진부하지만 진부하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어쩌면 지금처럼 인간관계가 퍽퍽해지고, 가족 간에도 오해가 쌓여 멀어지는 게 일상인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들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