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가 놓인 방 소설, 향
이승우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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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드라마 보는 걸 좋아하고 연애 소설 읽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사랑이란 무엇인지,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어 끝을 맺는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욕조가 놓인 방>은 사랑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존재 자체를 쫓는 소설이다. 



주인공은 종합상사에 근무하는 남자로 멕시코 출장 중 곤란한 상황에 빠진다. 자신의 영어가 통하지 않아 곤혹스러운 상황에서 한국인 여자가 나타나 상황을 해결해 준다. 그 후 고대 마야문명의 유적지에서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고, 그곳에서 그녀와 나눈 키스의 강렬함에 사로잡힌다. 



그와 아내는 아슬아슬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내는 첫사랑이었던 남자와 만남을 갖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알고도 그는 아무렇지 않았다. 멕시코 출장에서 한국에 다시 돌아온 그는 지방의 H 시로 발령을 받는다. 아내는 그와 함께 지방으로 떠나지 않겠다고 하고, 그는 도리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문득 H 시에 멕시코에서 만났던 그녀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그녀를 만난다. 

 

 

타인을 연민하는 것은, 자신에게로 향하는 연민을 차단하는 가장 효과적인, 그러나 교활한 수단이라는 걸 당신은 알고 있었다. 예컨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당신은 타인을 동정한다. 당신이 애처로워지지 않기 누군가가 애처로워야 하는 것이다.

<욕조가 놓인 방> p.66


1년여 만에 재회하며 그녀는 자신의 남편과 아들이 비행기 사고로 죽음을 맞은 일을 털어놓는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 그 아픈 상처를 드러내놓는 그녀에 대한 묘한 감정으로 둘의 동거는 시작된다. 연민, 애처로움, 동정. 그는 그 여자에게 느낀 감정들로 자신에게 향하는 연민을 차단시켜버렸다. 남편과 아들을 비행기 사고로 잃은 후 여자는 물에 집착한다. 바다의 투명한 물빛을 바라보며 '수장이야말로 가장 정결한 죽음'이라 말하기도 하고, 방에 욕조 하나만 두어 침대에 눕듯이 물이 담긴 욕조에 들어가 잠을 잔다. 그녀는 욕조 안의 물과 섞인 채 고요하게 잠에 들지만, 남자는 찰랑이는 물소리 때문에 점점 불편함을 느낀다. 결국 둘의 동거는 한 달 만에 끝이 난다.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당신이 자유롭지 않다는 뜻이다. 누군가를 기다리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의 자유는 차압당한다. 롤랑 바르트는 사랑하는 사람은 곧 언제나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사랑에 빠진 사람은 아무리 기다리지 않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기다리게 된다고, 아무리 여유를 부려도 항상 너무 빠르다고, 기다리는 것이 사랑의 속성이라고 정의했다. 

<욕조가 놓인 방> p,91


둘의 동거가 끝난 뒤, 남자는 오래도록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는 온종일 그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어 자유를 차압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 종일 그녀에게 전화를 걸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액자와 면도기를 가져가세요."라는 문자 메시지로 그녀의 집을 찾아가야만 한다고 자기 합리화한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지만 그녀는 집 어디에도 없다. 세상을 축소시켜 단 두 사람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사랑의 힘은, 자기 자신과 그 혹은 그녀만이 유일한 인류로 보이게 작용한다. 반대로 사랑이 시들해지면 유이한 인류였던 그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된다. 사랑이 끝나고 나서야 스며드는 법을 알게 된 그 남자는 사랑이 없음을 확인하며 그 존재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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