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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ㅣ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27
제리 브로턴 지음, 윤은주 옮김 / 교유서가 / 2018년 10월
평점 :

르네상스는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이탈리아를 기점으로 북유럽과 이베리아 반도, 이슬람, 동남아시아, 아프리카까지 일어난 문화 부흥 운동이다. 종교의 부패와 금욕주의, 폐쇄적인 봉건 제도로 인해 암흑과도 같았던 중세 시대를 벗어나 국가나 종교, 인종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을 그 자체로 존중하는 휴머니즘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동서양을 아우른 르네상스를 경제적으로 뒷받침한 것이 노예무역이라면? 르네상스가 서양이 독자적으로 성취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밟고 선 힘과 그로부터 획득한 부로 일어난 것이라면? 인간을 그 자체로 존중하자는 르네상스의 이상 아래 숨겨진 이야기들을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의 27번째 책 <르네상스>로 만나보자!
인문 에세이 <르네상스>는 르네상스에 대한 고전적 정의들을 살펴보고 그 문제점들을 파헤친다. 그 시대에 일어난 문학, 역사, 철학, 예술 등 문화 부흥은 이탈리아 전체에서 피어올랐고 프랑스, 영국,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체로 퍼져 나갔다. 이윽고 르네상스는 세계 규모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때 발달하기 시작한 인쇄술은 르네상스 운동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 15세기 초만 해도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은 부유한 주요 도시와 소수 엘리트들만 가질 수 있었다. 이후 르네상스와 인쇄술의 발달은 읽고 쓰는 능력과,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을 대중화에 밑거름이 되었다. 이 시대에 널리 읽힌 것들은 주로 고전이었다. 고전을 읽고 배우는 것이 르네상스에 부합하는 인문주의적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라 믿었고 이것은 하나의 수단이 되었다. 당시 사회에서 출세해 사회적 엘리트 계층으로 진입하는데 굉장히 효과적인 교육이었던 것이다. 과연 이러한 교육과 믿음이 르네상스가 가리키는 인문주의자의 참 모습인가? 인문 에세이 <르네상스>는 당대에 고전을 읽고 배우는 실제의 모습이 르네상스에서 말하는 인문주의자의 모습과는 동떨어졌다고 지적한다.
인쇄술이나 종교적 격동의 영향과 더불어 이러한 세계적 팽창은 이중적 의미의 유산을 남겼다. 그중 하나는 전쟁과 질병을 통한 토착 문명과 공동체의 파괴였다. 그들이 유럽인들의 신앙과 생활 방식을 채택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채택하는 데 관심이 없다는 이유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처럼 이 시대에는 문화적, 과학적, 기술적 성취와 더불어 종교적 불관용, 정치적 무지, 노예제 그리고 부와 지위에서의 심각한 불평등이 진행되었다. 이른바 '르네상스의 어두운 면'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르네상스> p.15
수학, 천문학, 기하학에서의 과학적 혁신 덕분에 동쪽과 서쪽 두 방향 모두에서 점점 더 야심찬 장거리 여행과 상거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그 자체로서 새로운 문제들과 새로운 기회들을 만들어냈다.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사람, 식물, 동물, 광물과의 만남으로 유럽인들은 심리학, 식물학, 동물학, 광물학 연구를 확대하고 재정립했다.
<르네상스> p.174
과연 르네상스 운동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르네상스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됐던 신대륙 발견이다. 신대륙 발견의 속을 들여다보면 이름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움, 로맨틱함과는 거리가 멀다. 항해술과 선박 건조술의 발달로 새로운 뱃길을 개척해 내고 이어 발견한 신대륙에는 이미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대륙, 새로운 땅이란 그저 서양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의 이야기이다. 유럽인들은 전쟁과 질병을 통해 토착 문명과 공동체를 파괴했고 그로부터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다. 신대륙을 착취해 벌어들인 부와 노동력은 고스란히 유럽 자본주의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토대가 되었다. 유럽인들은 자신의 야만적인 행위를 아름답게 포장하고 우상화했다. 인문 에세이 <르네상스>의 저자 덕분에 19세기 역사가들에 의해 각색되었던 이상화된 르네상스가 아닌 정확한 역사적 모습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