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지식인 - 아카데미 시대의 미국 문화
러셀 저코비 지음, 유나영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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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다. 새로 들어온 사람 자리는 티가 안 나지만 나간 사람의 빈 자리는 바로 알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요즘은 잘 통용되지 않는 말인 것 같다.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시대에는 누군가의 부재를 인식하기가 참 어렵다. 인문학책 <마지막 지식인>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 몰랐을 것이다. 1987년 쓰여진 이 책은 미국 문화에서 젊은 지식인, 공공 지식인이 소멸했음을 날카롭게 지적했었다. 하지만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재의 한국에도 공공 지식인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지금 이곳에서도 대중들에게 몰랐던 앎을 터득하는 즐거움을 길어다주었던 지식인들이 사라지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대중들이 똑똑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일부 세력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양산된 가짜 뉴스가 그나마 몇 안 되는 지식인들을 조롱하고 대중들을 호도해 그들을 멸시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속세의 관심이나 규율 따위를 무시하고 방랑하면서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시인이나 예술가를 보헤미안이라고 한다. 그런 보헤미안들이 모인 사회나 구역은 보헤미아라 불린다. 과거 젊은 지식인들은 도시 보헤미아에 살며 교양 있는 대중을 위해 집필했다. 지금도 널리 읽히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나 지그문트 프로히트의 정신분석학 관련 도서들이 바로 그 예이다. 오늘날의 지식인들은 보헤미아가 아닌 대학가로 모여든다. '정년' 교수직을 얻기 위한 '정치'에 참여하느라 바쁜 그들에게서 제2의 '코스모스'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식인들의 전문화는 일반 대중들이 그들의 결실을 향유하기 어렵도록 진입 장벽을 더 높이, 더 단단하게 만든다. 공공 지식인의 부재는 그들 존재의 소멸로 기인하기도 하지만 일부 지식인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지식에의 접근을 막는 것 역시 공공문화의 소멸로 이어지게 된다.


고등 교육기관인 대학이 크게 팽창하면서 많은 지식인들을 흡수했고 덕분에 대학 안에 자리잡은 지식인들은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 자신에게도 독이 되었고 사회에도 큰 해악을 끼쳤다. 대학 연구비 지원을 받거나 재단 기부금을 받으며 대학의 입맛에 맞는 연구를 하고 '물주'들이 원하는 결과를 내놓는, 대학을 위한 지식인이 된 것이다. 과격하고 자유분방했지만 맑은 진실을 쫓던 지식인들이 성숙하지만 보수적이고 틀이 박힌 지식인으로 돼 버렸다. 저자 역시 대학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혜택으로 원하는 연구를 행한 바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지식인>은 실종된 지식인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며 스스로에 대한 자아비판이기도 하다. 공공 지식인의 소멸과 공공 문화의 활력 저하를 진심으로 우려하는 마음에서 '팀킬' 혹은 '자살골'까지도 몸소 행하는 저자를, 그런 지식인을 가진 그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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