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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12월
평점 :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세 남자의 이야기다. 슬픔에 잠식당한 채 운명에 항거하기도,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불신하다 때론 목놓아 엉엉 울기도 하는 등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남겨진 이로 살아 나가는 이야기다.
죽음으로 인한 이별에는 다른 차원의 슬픔이 존재한다. 이별한 누군가가, 어쨌든 어딘가에 살아있으리라는 생각은 언젠가 또 새로운 인연으로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가느다랗지만 희망을 감각하게 하지만, 죽음은 다르다. 영영 볼 수 없이 누군가를 상실한다는 것은 짐작조차 할 수 없이 슬픈 일이다.
소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총 세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세 이야기는 각각 독립적으로 완벽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세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졌을 때 층층이 정교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된다. 문장들 속에서 절절하게 느껴지는 슬픔은 너무도 탁월해 중간중간 책 읽는 것을 중단하고 나 스스로를 오래도록 다독여야했다. 1주일 사이에-가스파르는 월요일, 도라는 목요일, 아버지는 일요일에 세상을 떠났다-그의 심장은 터져버린 고치처럼 풀려버렸다. 거기서 나비는 나오지 않고 잿빛 나방이 나와서, 영혼의 벽에 들러붙어 날아가지 않았다.<포르투갈의 높은 산> p.17
<포르투갈의 높은 산>의 첫 번째 이야기는 1904년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시작된다. 일주일 사이에 주인공 토마스는 사랑하는 연인과 아들, 아버지까지 세 사람이나 떠나보내게 되는 비극을 맞는다. 그리고 그는 뒤로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가 뒤로 걷는 이유를 상실한 이들에 대한 애도라고 추측했지만 그것은 인생에서 소중한 것을 빼앗긴 데에 대해 반발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17세기 중반에 쓰여진 일기를 하나 발견하게 된다. 일기는 17세기 중반, 아프리카 노예들에게 세례를 하기 위해 상투메 섬에 부임한 신부 율리시스가 쓴 것이었다. 그 일기장의 곳곳에는 '이곳이 집이다.'라는 문구가 광적으로 빼곡히 적혀 있었다. 토마스는 단번에 그 역시 '집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아본다. 당시 향수병과 상투메 섬의 인간의 잔학함과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처참하게 죽어간 노예들의 삶을 목도하며 피폐해져가던 율리시스 신부는 죽어가는 노예들 곁에서 기도를 하다가 하나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 운명에 이끌리듯 십자고상을 만들기 시작했고 과정의 기록을 남겼다. 토마스는 그가 만든 십자고상을 흔적을 좇던 중, 그것이 포르투칼의 높은 산에 위치한 '어느 멋지고 유서 깊은 교회'에 하사되었을 거란 기록을 찾아내고 무작정 그곳으로 떠난다. 교회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 그는 사고로 아이를 치고 만다. '그때 손 하나가 공포를 낚아채 상자에 넣고 뚜겅을 닫는다. 그가 얼른 떠난다면 그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한순간 이 사고는 그의 내면에만 있는 것, 개인적인 흔적, 그의 감각 외에는 어디에도 남지 않을 자국(p.148)이라고 생각하고 바로 시동을 걸고 사고 장소를 떠나버린다. 그리고 멀리서 누군가 그 아이를 안고 달려가는 것을 보고 토마스는 무너져 내린다. '
그는 도둑질의 피해자였고, 그리고 이제 도둑질을 저질렀다. 두 사건 모두 아이를 빼앗아 갔다. 두 사건 모두 그의 선의와 비통한 마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두 사건 모두 가능성은 희박했다. 고통이 있은 뒤에 행운이 따랐지만, 다시 한번 그의 운은 바닥났다. 그는 갑자기 집어삼켜지는 기분이다. 마치 그가 물 위에 떠서 버둥대는 벌레이고, 거대한 아가리가 그를 꿀꺽 삼키는 것 같다(p.149).'
두번째 이야기는 1938년 포르투갈, 새해로 넘어가는 한밤중에 시작한다. 부검 병리학자 에우제비우에게 마리아 라는 여인이 방문한다. 가방 안에 남편의 시신을 넣고 먼 길을 달려온 그녀가 부검을 의뢰하며 한 말은 조금은 이상했다. "그이를 열어서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말해주세요." 그리고 죽은 남편과 그를 앞서 세상을 떠난 아들의 이야기를 털어 놓기 시작한다. 아이가 떠난 뒤 메워지지 않던 침대의 빈 공간과, 아무것도 맞아떨어지지 않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에우제비우가 마리아의 남편 라파엘의 부검을 시작하고 환상적인 일들이 일어난다.
"이제 우리의 생활에서 아무것도 맞아떨어지지 않았어요. 서랍은 더 이상 꽉 닫히지 않았고, 의자와 탁자는 흔들거렸고, 접시는 이가 나가고, 숟가락에는 음식 찌꺼기가 말라붙었죠. 옷은 얼룩지고 찢어지기 시작했고-바깥세상 역시 딱딱 들어맞지 않았어요.아들의 죽음은 외부 세계에 별다른 차이를 가져오지 않았어요. 아이들은 다 그렇지 않나요? 대물림하는 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재산을 분할해야 되는 것도 아니죠. 완수하지 않은 일이나 역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청산해야 되는 빝도 없어요. 아이는 부모의 그늘에서 빛나는 작은 태양이고, 그 태양이 사라지면 부모에게는 어둠만 있을 뿐이죠. <포르투갈의 높은 산> p.244
마지막 세번째는 1981년 캐나다에서 시작된다. 주인공인 피터의 삶은 40년간 고락을 함께해온 아내가 위중한 병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서는 데부터 뒤흔들린다. 아들의 결혼 생활은 파탄났고, 며느리와 손녀인 레이철은 캐나다를 떠나 호주로 가버렸으며 결국 아내 클래라는 결국 세상을 떠난다. 피터는 휴식차 떠난 오클라호마에서 우연히 영장류 연구소를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오도'라는 이름을 가진 침팬지를 만난다. 이상하게 그의 눈빛에 사로잡혀 침팬지를 만 오천 달러를 주고 구입하게 된다. 그리고 오도를 키울 수 있는 곳을 물색하다 자신이 태어나서 두 살까지 자랐던 포르투갈의 높은 산, 투이젤루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캐나다에서 살던 집과 자동차를 팔고 단촐한 짐을 꾸려 투이젤루로 떠나 그곳에서 버려진 집을 구입해 오도와의 삶을 꾸려나가기 시작한다. 피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물의 기술을 익혔고, 시간이라는 경주에서 족쇄를 풀고 시간 자체를 음미하는 법을 배웠으며 강변에 앉아 빛나는 휴식의 상태에 젖는 데 점점 익숙해졌다(p.366).
오도는 그의 삶을 차지해버렸다. 그녀는 오도를 닦아주고 보살펴준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를 훨씬 넘어선다. 피터는 침팬지의 기품에 감동받았고,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랑이다.<포르투갈의 높은 산> p.366
세 편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세 남자는 삶의 전부였던 사람을 잃고, 절망하고 분노하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향해 떠났다. 슬픔에 잠식당한 채, 분노의 대상이 누구인지조차 명확치도 않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들은 떠났다. 그들은 그곳에서 간절하게 원했던 것을 찾게 되었을까? 인간은 이성적 존재지만 자신이 품은 모든 물음에 이성적 해답을 원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존재하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십자고상을 찾으러 먼 길을 떠난 토마스, 죽은 아내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오래도록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나서 결국은 흐느껴울고 말았던 에우제비우, 그리고 아내가 떠난 후 모든 것을 버리고 침팬지 오도와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떠난 피터까지 한없이 연약해지는 순간에 갈구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