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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출판 - 작은 출판사를 꾸리면서 거지 되지 않는 법 ㅣ 날마다 시리즈
박지혜 지음 / 싱긋 / 2021년 11월
평점 :
책 한 권이 가진 정교한 세계, 그리고 이야기. 나는 책이 좋다. 아침에 눈을 뜨면 늘 설렌다. 아이들을 어린이집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서 어제는 무슨 책을 어디까지 읽었더라, 오늘은 어떤 책을 읽을까 생각한다. 하루에 몇 시간밖에 되지 않는 자유 시간이지만 책을 읽는 생각만 해도 온 몸에 행복한 달달함이 감돈다. 그럴만큼 나는 책을 좋아한다. 책에 관한 것은 무엇이든 다. 그래서인지 책의 문장들을 매만지고 다듬었을 편집자나 외서를 아름답게 한국어로 번역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분투했을 역자에게도 다정한 마음이 든다. 자신만의 책을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 홀로 출판사를 차리는 사람들에게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싱긋의 '날마다' 에세이 시리즈의 <날마다, 출판>을 만나 보았다.

한 권의 책에는 한 개의 정교한 세계가 있다. 차례라는 지도를 통해 우리는 그 세계가 지닌 전체로서의 체계성을 확인할 수 있고, 문장을 따라가며 그 세계의 온갖 사물과 풍경, 정취를 경험할 수 있다. 종이라는 한계야말로 책이 지닌 가장 역동적인 가능성이다. 한 줄 세계의 위치를, 손으로 가리켜 짚어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기록과 기억의 행위인가. 따라서 책은 말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장 체계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매체인 동시에 듣고자 하는 욕망을 가장 제약 없이 충족시키는 수단이다.
<날마다, 출판> p.10
종이의 결, 그 안에 잉크로 찍어 누른 한 자 한 자의 모양새, 두 페이지 펼침면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정보들, 각기 역할에 알맞은 서체와 판형, 그로 인해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얻는 몰입감, 읽는 동안에 얻은 행복이 책장에 꽂혀 진시될 때에 느껴지는 만족감, 그 책등을 볼 때마다 되살아나는 향수.
<날마다, 출판> p.79
<날마다, 출판>의 책의 부제는 '작은 출판사를 꾸리면서 거지 되지 않는 법'이다. 우리 나라 인구는 5,200만이고 서점 수는 2,000개가 안 된다. 2019년 기준 출판사가 거의 7만 개에 다다르며 1인당 독서량은 꾸준히 주는 추세다.(p.31) 이런 총체적인 난국 속에 저자, 독자, 출판사 모두에게 의미 있는 책을 만들어 보겠다고 호기로운 출사표를 낸 출판사 '멀리깊이'의 대표는 '돈 말고 다른 가치, 대학 말고 다른 방법, 공무원이 아닌 다른 꿈, 인간이 스트레스가 아닌 위로가 될 수 있는 다른 차원의 문제 제기, 외로움이라는 허기를 달랠 다른 인생의 가치를 제시해 줄 수 있는(p.24)' 책을 내고 싶었고 그래서 출판사를 차렸다고 한다. 일단 시작하면 '그지'가 될 확률이 굉장히 높은 대표적 사양산업인 출판업계로 홀홀단신으로 뛰어들어 1년을 버텨낸 분투의 기록이다. 출판사를 차리고 11개월 만에 월급을 지급할 돈이 없어 월급 지급 시기를 다음달로 미뤄야 했지만, 흔들림 없이 살 사람이 정해져 있는 책이 아닌 사지 않을 수 없는 가치가 있는 책을 내는 데 집중했다고 한다.
출판사 창업일부터 딱 1년인 시점까지의 손익계산서를 공개한 것은 이 책의 부제인 '작은 출판사를 꾸리면서 거지 되지 않는 법'에 한층 더 본격적이다. 저자와 독자, 그리고 책을 내는 자신에게도 의미있는 책을 만들면서 '그지'가 되지 않기 위해 고민하고 분투한 흔적이 가득하다. 1인 출판사 창업을 고민하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