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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선샤인 어웨이
M. O. 월시 지음, 송섬별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11월
평점 :
절판

<마이 선샤인 어웨이는>는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의 '배턴루지'라는 이름을 가진 한 마을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중산층의 가정들이 모여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그곳은 그저 예상할 수 있는 편안한 일상이 하루하루 흐르는 곳이다. 무더운 날씨를 견디기 위해 친구나 가족과 한자리에 모여 시원한 아이스티나 토마토를 먹는 것을 즐기고 푸짐하게 차려낸 근사한 식사를 하며 다음 식사엔 또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주어진 대로의 삶을 충실히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 그런 평범하고도 평화로운 마을에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배턴루지의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린디 심프턴이 마을의 한 도로에서 성폭행을 당한다. 그 도로는 린디가 육상부로 활약하며 학교 트랙을 뛰고 돌아오던 귀가길이기도 했고, 그 마을의 아이들이 뛰어놀던 정겨운 길이었다. 예뻤고 운동도 잘했으며 인기가 많아 늘 반짝반짝 빛이 나던 린디는 그날 이후 '린디'의 모습을 잃어 버린 린디가 되어 버렸고, 배턴루지의 아이들도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게 되었다.
린디에게도, 주인공 '나'에게도 사춘기는 버거웠다. 주인공 '나'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 또래인 대학생과 바람이 나 가족을 버렸다. 그리고 몇 해 지나지 않아 누나인 해나가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그 시절의 나를 구멍 뚫어보면 린디 옷장에 들어 있던 것들만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피 한 방울 안 들어 있었을 것이다. 집착에 사로잡힌 심장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난 그 무엇도 지지하지 않았고, 그 무엇도 지키려 들지 않았다.
<마이 선샤인 어웨이> p.86
주인공은 린디를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짝사랑했지만 그것은 조금은 서툴고 그릇된 방식이었다. 린디를 향한 마음을 비밀스럽게 담아 간직했던 주인공 소년의 나무 상자 안에는 린디를 위한 자작시뿐만 아니라 성인 잡지에서 오려낸 어느 여성의 사진에 린디의 얼굴을 오려 붙인 종이 쪼가리 같은 것도 있었고, 린디가 성폭행을 당했을 당시 신고 있었던 운동화 한 짝 같은 것도 담겨 있었다. '나'가 린디에게 품었던 마음은 사랑이라고 하기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조금 지나친 면이 있었다. 아마도 사건 당시 자신이 보았던 무언가, 우연히 듣게 되었던 어떤 것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하여 그 범죄에 자신도 가담한 것에 다름 아니라는 죄책감에 기인한 것이었을까.
그 죄책감으로 린디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녀를 행복하게 도와주고, 린디를 극적으로 망쳐 버린 범인을 자기 손으로 잡겠다고 나선다. 비겁하고 모든 일에 무관심한 이기적인 한 소년에서 한 뼘 자란 듯 보이지만 그것이 린디를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것에서 진정한 성장을 하게 된다. 주인공은 린디가 가진 상처가 얼마나 깊고 아픈지를 이해하기보단 그저 자신의 죄책감을 희석시키기 위한 이기적인 폭력 행위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년은 '린디가 강간을 당했으며 그 사건으로 인해 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만약 린디를 강간 사건 이전의 모습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면, 온 세상이 어린 시절로, 아버지가 우리를 떠나기 전으로, 누나가 아직 살아 있었던 때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p.387) 오해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달빛이 내린 거실에 가만히 앉아 서로를 오래 바라 보았다. 서로를 매일 보았는데도 왠지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또 어쩌면, 내 얼굴에 어머니와 근본적으로 닮은 부분이 있다는 걸 느꼈다. 내가 어머니의 일부라는 사실, 누가 보아도 우리가 피를 나눈 사이라는 걸 알 수 있으리라는 사실 말이다. ...(중략)...
"엄마가 늘 네 곁에 있다는 거 알지?" 어머니가 물었다.
"알아요, 엄마. 저도 그래요."
<마이 선샤인 어웨이> p.260
누나는 숲속에 혼자 앉아서 감사한 것들을 목록으로 써보라는 과제를 받았다. 목록 맨 위, 끄적여놓은 나비 그림들 옆에 누나는 큼직한 필기체로 "새로운 아기 남동생"을 주셔서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기적같은 일이라고 했다. ...(중략)... 누나의 글을 읽는 순간 마치 누나의 목소리가 다시금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누나가 눈앞에 보일 것만 같았다. 내가 다시 완전해진 것 같았다. 죄의식은 사라졌다. 후회도 없었다. 용서받은 기분이었다.
<마이 선샤인 어웨이> p.422
몇 년 후, 주인공은 대학교 진학을 위해 배턴루지를 떠났고 식물학자가 되었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렸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많은 것이 변했지만 린디에 대한 죄책감은 지워지지 않았다, 파도가 해변에 남기는 자국처럼 아주 조금 잊혔다가 다시 더해질 뿐이다. 이렇듯 과거의 죄책감은 지독한 방식으로 그 범죄에 가담했다는 죄의식과 함께 늘 그를 괴롭혔다. 떨쳐낼 수 없는 악몽같던 기억은 어느 날 어머니가 건네 준 죽은 해나 누나의 일기장에서 발견한 온전한 모습의 사랑으로 지워진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이 아닌, '사랑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마지막 문장은 그래서 더 가슴에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