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나무 1 - 그림 문자로 풀어내는 사람의 오묘한 비밀 한자나무 1
랴오원하오 지음, 김락준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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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은 거북이의 복부 껍질이나 짐승의 어깨뼈를 사용해 점을 친 뒤, 그곳에 점을 친 내용과 결과를 새겨 넣은 글자를 일컫는다. 1899년 발견된 갑골문은 중국 고대 사회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생활상까지도 오롯이 담아낸 귀중한 역사적 자료라지만 그에 관한 지식이 미천한 내가 보기에는 지금의 한자와 비슷해 보이기도 하는 반면 무의미한 낙서쯤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한자나무>는 중국 고문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동시에 당시의 생활상과 정치 경제적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이 책은 마치 고대 문명으로 접근할 수 있는 비밀의 마스터키와도 같았다. 



중국 역대 왕위 계승자는 주로 적장자(정실이 낳은 맏아들)였고, 이 방식은 상나라 후기의 제왕들이 만들었다. 왕위 계승자인 장자는 비교적 많은 특권을 가졌다. 예를 들어 장자는 제사를 지내는 대표권이 있어서 제를 올리기 전에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고대 중국인들은 물이 부족한 북쪽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농작물도 가뭄을 잘 이기는 보리를 심었고, 목욕 또한 자주 하지 못했다. 따라서 대야에 물을 받아 목욕을 하는 사치스러운 향유는 거의 장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한자나무 1> p.50~51 맏 맹(孟)에 대한 설명 중에서



갑골문, 금문은 모두 노예를 잡아 배에 태운 것을 표현했다. 그래서 '복'은 사람을 굴복시키다'라는 의미를 낳았고, 이 땐 정복, 복종 등의 표현에 쓰인다. 또한 정복한 이민족들이 저마다 독특한 옷을 입은 점 때문에 '의복'이라는 의미도 낳았다. 

<한자나무 1> p.92 옷 복(服)에 대한 설명 중에서



 


<한자나무>는 5000년의 역사를 가진 한자에 대한 책이지만 비단 한자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한자나무>의 저자는 먼저 한자 하나하나를 잘게 쪼개 그것을 구성하는 부수부터 각 부분이 의미하는 바를 명쾌하게 분석해냈다. 중국의 간체자에 익숙한 중문학도인 내가 간혹 대만 및 홍콩 등지의 번체자를 접할 때 맞닥들여야 했던 갑갑함과 울렁증을 해소시켜 주는 느낌까지 들었다. 각 한자를 구성하는 부수의 기원 및 유래와 변천과정을 밝혀 내고 그것을 둘러싼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도 더했다. 글자 하나에 그렇게나 오묘한 원리와 이야기가 담겼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책의 저자가 인류학자나 문자학자가 아닌 이공계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랴오원하오 교수는 우연히 중국 고문자에 흥미를 갖고 10여 년간이나 다양한 검증 방법으로 연구와 천착을 거듭했다고 한다. 자신의 주특기인 컴퓨터 정보처리 능력으로 한자들 사이의 관계와 그 원리를 밝혀내었고 연구 결과의 정합성을 높이기 위해 치밀한 원칙까지 세워 재차 검증해 얻어낸 결과물이 바로 <한자나무>이다. 이공계 출신 교수가 그려낸 중국 고문자의 파생 관계도를 보며 나의 지적 호기심도 충족할 수 있어 즐겁기도 하지만 이공계 출신의 교수가 고문자 연구에 천착하며 한자가 주렁주렁 달린 한자나무를 그려내고 재차 삼차 검증하며 흡족했을 모습을 상상하니 무언가를 즐기는 사람은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옛말이 떠올랐다. 덕질(?)에 심취한 한자 매니아 저자의 책은 감탄을 자아낸다. 한자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나 혹은 나처럼 번체가 어려운 중문학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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