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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숨결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6
유즈키 유코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1년 9월
평점 :

주인공 후미에는 남편 도시유키와 결혼해 슬하에 두 딸을 두었고, 남편이 혼자 벌어오는 수입으로 아둥바둥 살아가는 평범한 전업주부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가 해리성 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이다. 이따금 육아의 고통이나 자신의 추한 모습을 마주할 때면 현기증이 나며 눈앞이 흐려지고 모든 감각이 모호해진다. 중학 시절 다이어트에 성공해 늘 예쁘다, 귀엽다 칭찬받으며 인기가 많았던 그녀는 육아에 지쳐 자신을 돌볼 시간조차 없고 88사이즈의 옷도 꽉 낄 정도로 몸무게가 늘었다. 그렇게 잊고 있었던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은 이 책의 제목인 <달콤한 숨결>을 감지하고 다시 눈을 뜬다. 학창 시절의 동창 가나코를 우연히 만나게되면서 말이다.
"내게 무타 씨는 동경의 존재였어. 예쁘고 화사해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인기가 있었지. 늘 사람들 속에서 빛났고 말이야. 무타 씨처럼 되고 싶다고 늘 생각했어." ...(중략)...
"무타 씨는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어. 하지만 나는 잊지 않았어. 언젠가 무타 씨를 만나면 꼭 보답하고 싶다고 내내 생각했어."
<달콤한 숨결> p.47
후미에는 이벤트에 당첨되어 디너쇼 티켓을 받게 되는데, 도내의 일류 호텔에서 열리는 인기 남성 연예인의 디너쇼였다. 그곳에서 우연히 중학교 동창 가나코를 만나게 된다. 가나코는 엄청나게 불어나 과거 리즈 시절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후미에에게 "정말 아름다운 사람은 체형이나 나이가 변해도 역시 안에서 빛이 나는구나"라고 추켜세우며 중학교 시절 왕따를 당했던 자신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주었던 것을 보답하고 싶다면서 가마쿠라의 별장으로 초대한다. 가나코가 후미에를 별장으로 초대한 이유는 고가의 화장품 브랜드 '뤼미에르'의 국내 런칭을 위해서였다. 후미에는 사고로 얼굴에 큰 흉터가 생긴 가나코를 대신해 나서주기로 한다. 하지만 더 큰 욕망과 위험이 숨어있다는 것을, 욕망에 눈이 어두워진 후미에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후미에는 매달 가나코가 보내주는 수당으로 이전에는 엄두도 못 낼 풍족한 삶을 산다. 그녀가 '이 행복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동안 가마쿠라 경찰서 소속 하타는 인근 별장에서 발생한 '회사 임원 살해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다. 후미에와 하타, 등장인물과 시간대 모두 다른 두 이야기가 나란히 진행되다 어느 순간 한 점에서 모인다. 변사체로 발견된 다자키 미노루는 후미에의 매니저 노릇을 하던 이이다 쇼고였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자신이 너무 많은 걸 바랐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는 당연하다고 여기던 걸 잃을 때이다.
<달콤한 숨결> p.443
누구에게나 욕망은 있다. 더 아름다워지고 싶은 본능과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그 자체로서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달콤한 숨결>은 숨어 있던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포착해 보여준 다음, 그것이 뒤틀릴 수밖에 없는 사회를 조명한다.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아름다움이 최고의 가치라고 추켜세우고 그 반대는 혐오한다. 도처에 깔린 착취의 덫은 또 얼마나 매혹적인가. 물질만능주의는 금전을 욕망하는 여성 스스로가 성적 착취의 길로 걸어 들어가게 만들고 하나의 착취가 끝나면 다음 착취를 찾아가게 만든다. 무능한 공권력이 단죄하지 못한 욕망은 더 큰 욕망으로 번져 나가기도 한다. 욕망이 끝을 모르는 것은 이 사회 곳곳에 깊숙이 뿌리내린 '달콤한 유혹의 숨결'탓일지도 모르겠다. <달콤한 숨결>의 작가 유즈키 유코는 소설 도입부부터 섬세하고 촘촘하게 곳곳에 복선을 깔아둔다. 이야기가 극적인 반전을 맞고 폭풍처럼 이야기가 전개되면서도 깔아둔 '떡밥'을 모두 '회수'한다. 뒤틀린 욕망이 언제고 발현될 수 있는 사회 그 자체를 대면한 것 같아 마음은 참 복잡하지만, <달콤한 숨결>은 감탄, 경탄 그 자체로 명명될 수 있을 것 같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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