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킬레우스의 노래 (리커버 특별판)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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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낭중지추'적 위인만을 기억한다. 출중한 능력, 빼어난 매력,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악랄함,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방짐 등 주머니를 뚫고 비어져 나올 만큼의 특별함이 없어서는 역사에 기록되고 시대를 뛰어넘어 후대에까지 이름을 남기기가 어렵다. 그런 이유로 파트로클로스는 잊힐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왕자였지만 작고 가냘프고 빠르지도 않았고 튼튼하지도 않았다. 절세의 미녀 헬레네를 되찾아 오기 위한 트로이 전쟁에서 그의 활약은 그야말로 '지분'을 찾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미미하다. 하지만 매들린 밀러는 그런 그에게 주목했다. 아킬레우스의 그늘에 가려진 파트로클로스의 모습을 그려내고 그의 목소리를 상상해냈다. 두려울 것이 없는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분노하고 결국 자신의 목숨마저 내던져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파멸적 사랑이었을 것이다.



소설은 파트로클로스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가 다섯 살이 됐을 때 그의 아버지가 주관하는 경기에서 그, 아킬레우스를 만난다. 아킬레우스는 뛰어난 기량으로 우승하게 되고 월계관을 차지한다. 그의 아버지 펠레우스가 자랑스러워하며 웃는 얼굴로 아킬레우스를 데리러 온다. 파트로클로스의 아버지는 아킬레우스를 가리키며 그에게 말한다. "아들은 저래야 하는 거다."



어느 날 파트로클로스가 사소한 다툼 끝에 한 아이를 살해하게 된다. 그 아이는 막강한 집안의 장남이었고 이 사건으로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 두려워진 아버지는 그를 다른 나라로 추방시킨다. 몸무게만큼의 금붙이와 함께 쫓겨간 곳은 '프티아'라는 작은 나라였고 그곳은 펠레우스가 다스리는, 즉 아킬레우스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 둘은 급속도로 친해진다. 두 소년은 펠리온 산의 케이론에게 수업을 듣기 위해 떠나게 되고 그곳에서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고 열렬한 사랑을 키워나간다. 영광스럽게 단명하는 삶과 무명인 채 오래도록 외롭고 쓸쓸하게 장수하는 삶 사이에서 고민하던 아킬레우스는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의 꾀임에 빠져 트로이아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그리고 이 연인은 죽음이라는 파국을 향해 한 발자국씩 발을 내딛기 시작한다.



소설<아킬레우스의 노래>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동일한 결말을 가진다. 패색이 짙었던 트로이아 전쟁은 승리로 방향을 틀었고, 헥토르는 죽음을 맞았으며 그를 살해한 아킬레우스 역시 신들의 예언대로 불멸의 삶에 가닿지 못한 채 유한한 존재로 생을 마감했다. 모든 것은 변하지 않았다. 오로지 명예를 놓고 남자 대 남자로 싸웠던 전쟁터에서는 강한 남성성만이 아리스토스 아카이오이(그리스의 으뜸)라 추앙받는다. 누구나 다 그랬듯 전쟁을 위해 태어난 전사이자 아리스토스 아카이오이인 아킬레우스에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파트로클로스라는 인물도 기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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