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풍 요리사의 서정
박상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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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뭔가 설레는 순간이 오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오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설렘이란 내게 시제를 초월하는 작용이었다. 과거의 한순간도 오늘 기억하며 설렐 수 있고, 미래 따위도 오늘 상상하며 설렐 수 있다. 설렘을 느끼는 순간의 감각들은 시제들을 한 덩어리로 묶기도 한다.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 p.8


50년 전 이탈리아에서 독립한 이오니아해의 작은 섬나라, 삼탈리아. 청년 이원식은 삼탈리아로 가는 배의 갑판에 서서 가슴 가득 서정과 낭만, 설렘을 느끼고 있다. 흔히 오지 않는 인생의 설레는 순간을 만끽하며 아직 설렘이 괄약근 주름에 저릿할 때(p.10) 선장이 갑자기 그의 등을 확 떠밀었다! 그것은 바로 삼탈리아 밀입국 도우미 서비스 중 하나였다. 이원식이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을 보며 선장이 외친다. "해류에 몸을 맡기면 삼탈리아 땅이 나올 거야. 살아남으면 좋은 평점 부탁하네!"(p.11) 한국의 청년 이원식은 왜 삼탈리아로의 밀입국을 시도하는가,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은 그의 사연을 거슬러 올라간다.



원식은 시인이 되고 싶었다. 어느날 우연히 쓰러져가는 헌책방에서 운명처럼 <조반니 펠리치아노의 빈티지 레시피 쿡북>이라는 이름을 가진, 요리책인지 시집인지 알 수 없는 신비한 책을 발견하게 된다. 삼탈리아어로 된 그 책을 해석해가며 조반니가 쓴 시에 빠져들었고 어쩐지 요리가 배우고 싶어진 그는 요리사가 되기 위해 정진하다 연인 앨리스의 권유로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 참가한다. 준우승을 거두었지만 악성 루머로 인해 악플에 시달리며 그의 가족까지 신상이 다 털려 버린다. 인생의 쓴맛을 호되게 본 그는 삼탈리아로 오면 비밀을 나눠주겠다던 책의 글귀를 떠올리고 조반니 펠리치아노의 비밀을 좇아 삼탈리아로 향하게 된다. 그가 요리사가 되기까지의 과정도 쉽지 않았지만 조반니를 찾아가는 여정 역시 녹록치 않다. 하지만 원식에게 다른 대안은 없었다.



원식은 무일푼으로 삼탈리아로 향했지만 그곳은 시가 화폐처럼 통용되는 나라였다. 돈이 없을 때 좋은 시를 읽어주면 택시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되고 술집에서 공짜 술을 마실 수도 있는 곳이었다. 특히나 한국의 시는 삼탈리아인들이 가장 사랑해마지 않았다. 원식은 배낭 여행에 챙겨온 시집으로 위기를 넘겨가며 조반니를 찾기 위한 여정을 계속해나간다. 과연 원식은 조반니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을까!



"인생을 잘 계산하지 않으면 네 삶의 구조는 엉망진창 오답이 될 거야."


"인생에 정답이 있다는 생각이 오답일걸?"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 p.92



인간의 짧은 생은 지나가지만 그 무언가는 꾸준히 남는 것이었다. 그것이 시간과 공간을, 그리고 인생을 모조리 설명해주고 있었다.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 p.254


원식은 조반니의 비밀 레시피를 알아내기 위해 떠났다. 하지만 삼탈리아에서 마주하게 된 조반니의 비밀에서 예상치도 못하게 엄마의 김밥과 재회한다. 그가 평범하다고 폄하하고 무시했던 엄마의 김밥은 엄마의 엄마에게, 그 엄마의 시어머니의 유전자에 기록된 연속된 무언가였다. 원식은 이것이야말로 궁극의 레시피이자 인간의 짧은 생이 서로 맞닿아 꾸준히 남는 인생 그 자체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새새끼, 시베르놈 등 읽기만 해도 가슴이 후련해지는 육두문자를 남발하고(ㅋㅋ) 뇌에 언어 패치는 심었지만 두피에 모근은 심지 못한 탈모인 셰르비엥 삼시용사시옹 등 웃기는 인물 대잔치인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 읽을 때는 눈물까지 흘려가며 박장대소했지만 덮고 나니 그일이 아득히 먼 우주같이 느껴진다. 또 다시 펼쳐 읽으면 역시 웃기다. 책에 남발한 과학 용어들은 이론적 근거가 하나도 없으며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 미안하다는 작가의 말도 너무 웃기다. 왜 자꾸 웃기려고 하냐는 질문에 인생의 비애에 지기 싫다며, 인간이 발명한 것 중에서 가장 우아한 게 유머라는 작가의 말은 또 너무나 멋지다. 웃긴데다 멋지고 서정적인데다 찰진 욕도 할 줄 알는 매력부자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으로 올 여름 휴가는 삼탈리아로 떠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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