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이어 말한다 - 잃어버린 말을 되찾고 새로운 물결을 만드는 글쓰기, 말하기, 연대하기
이길보라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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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장애학과 페미니즘을 이론적으로 배운 적이 없지만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당신으로부터 사랑과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는 걸 배웠다. 지금부터 당신을 이어 말해보겠다.


<당신을 이어 말한다> p.11


저자는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CODA다. 엄마를 바라보며 손으로 옹알이를 했고 수화언어를 배웠으며 세상으로부터 음성언어를 배웠다고 한다. 비장애인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대면한 장애와 그것과 결합하고 서로 영향을 미치는 인종, 신분, 민족, 계급 등의 차별 유형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서사의 장을 마련한다. 그렇다. 저자는 수많은 민감한 주제들에 이어 말하기를 시작한다. 이윽고 그가 들었던 마이크를 우리에게 내민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무언가에 대해 가졌던 말할 권리를 나 스스로 팽개쳐버렸다는 것을. 불편한 사회의 틀에 나의 생각을 맞춰 모양을 비틀어버렸고, 불편한 사실을 목도하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아왔다는 것을. <당신을 이어 말한다>를 읽는 동안 그런 '나'가 깨지고 부서져나갔다. 그리고 내 안의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장애란 결여의 유의어가 아니다. 온전치 않은 상태로 극복해야할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우리 안에 공고히 자리잡은 '장애 극복 서사'를 극복할 것을 제안한다. 일련의 고정된 사고를 극복하고 해방되는 것, 장애 해방 서사를 통해 우리는 세상에 쓰여진 단단한 서사들을 깨뜨리고 부수어 다시 쓸 것이다.



당신과 나의 다름이, 차이가 주는 풍성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이 되고 불평등이 되는 일,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말했을 때 불편한 시선을 마주하게 되는 일, 성폭력 피해자 생존자의 용기 있는 고발과 연대의 메시지가 번번이 남성연대 사법부 정계 앞에서 부딪히는 일. 그들만의 공고한 리그와 그곳에서 나오는 말이 우리의 발목을 잡을 뿐이다.


<당신을 이어 말한다> p.68


왜 잘못된 일을 이야기할 때 선언이 필요한가. 저자는 과거 모 영화제의 숙소에서 '몰카'당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이를 경찰에 신고하자 '몰카'인데 찍었는지 어떻게 아느냐며 반문했고 모 기사는 국민의 알 권리를 운운하며 기사화했다. 모두가 다 아는 비밀 같은 낙태는 또 어떤가. 원치 않는 임신 중지는 비싼 수술비를 모아야하고 내 신체의 기능 상실을 담보해 음지의 병원에서 비밀리에 행해진다. 이것은 왜 '말'해지면 안되는 것인가. 방관당했고 침묵당했고 가해당한 것들을 생각해 본다.



없던 길을 만드는 사람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무언가를 선언하는 사람들, 발화되지 않은 것을 발화하는 일. 선언하는 행위로서 말해지지 않은 것을 실재하게 하는 일. 누군가는 허공에 대고 외치는 것이라 폄하하겠지만 우리는 안다. 말을 하기 전과 하고 난 후는 분명히 다르다는 걸. 호명하면 누군가가 말한다는 걸. 나도 그랬다고. 나 역시 그렇다고. 응답이 하나둘 모이면 물결이 되고 공동의 경험이 된다.


<당신을 이어 말한다> p.96


저자는 없던 길을 만들고,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무언가를 선언하고, 발화되지 않은 것을 발화한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다채롭고 새로워보이는 여러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라고 해서 잘못 든 것이 아니라는 걸 지금 내가 선 이 곳에선 보이진 않지만 다른 많은 이들도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무언가를 선언하고 발화되지 않은 것을 발화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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