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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장도연·장성규·장항준이 들려주는 가장 사적인 근현대사 실황 ㅣ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
SBS〈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제작팀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4월
평점 :

요즘 신랑이 가장 애정하는 프로그램이 일명 꼬꼬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다. 마음이 약한 남편은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눈물바람이면서도 청소기를 돌릴 때 아이들 먹을 것을 챙겨줄 때도 눈을 떼질 못한다. "어쩌면 저러냐, 어쩌면 사람이 저러냐고."라며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줄줄 흘린다. 수십 년이 지난 옛날 이야기에 남편이, 어쩌면 우리 모두가 울고 웃게 되는 것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가 철 지난 '그날'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에 돌아보아도 유효한 메시지들과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한 불안과 공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날 철거반원들도 절박하기는 마찬가지였어. 그중에는 구청 공무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구청에서 고용한 박봉의 일용직이야. 구청에서 그 사람들에게 맡긴 업무가 '철거'였던 것뿐이지, 조직적으로 동원된 철거 깡패가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만일 상부에서 시킨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었지. 일용직이니까 갑자기 다음 날부터는 출근하지 말라고 해벌리 수도 있잖아. 그날 철거반원들도 생계를 위해서 무등산을 오른 거야. 결국 어떤 대책도 없이 무조건, 불까지 질러서라도 깨끗이 치우라고 한 건 국가인데 생존의 최전선에서 힘없는 소시민들끼리 부딪혀서 끔찍한 참극이 발생한 거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p.135
'놀면 뭐 하니?'에 출연한 가수 김정민의 이야기가 뇌리를 떠나질 않았다. 가수로 뜨겁게 성공하고 부를 거머쥐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어머니에게 집을 사드린 일이라고 한다. 산 속의 무허가 건물에서 어렵게 살아가던 김정민은 어머니에게 동네에서 가장 좋은 집을 가리키며 나중에 꼭 저집을 사드리마고 약속을 했다고. 그 장면이 머리를 떠나질 못했던 이유는 바로 그 모습에서 무등산 타잔 박흥숙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박흥숙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큰 형을 대신해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 돈이 없어 중학교 진학을 포기해야했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이어 사법고시를 준비했다고 한다. 집을 구하지 못해 산 속에 움막을 파고 대충 지붕만 덮어 살아갔는데 1972년 5월 무등산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고 전국체전 개최 예정지가 되고 나서부터 그곳의 무허가 건물을 철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불을 질러서라도 깨끗이 치우라는 국가와 그곳이 아니면 살 곳이 없는 시민들, 그 과정에서 격분한 박흥순은 망치로 4명을 죽여버렸고 주경야독하며 사법고시 합격을 꿈꾸던 청년은 희대의 살인마로 등극한다. 전 세계에 보란듯이 쌓아 올린 건물들과 70여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뤄낸 경제 성장이 가려진 '가장 비인간적인 철거를 자행하는 나라'라는 오명이야말로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이야기가 아닐까. 꼬꼬무를 통해 보는 '그날'이야기는 결국 현재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