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궤적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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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 씨는 몰라요. 나쁜 짓이라는 건 연결되어 있어요. 내가 훔치는 것은 내 탓만이 아니에요. 나를 만든 것은 아방이와 오마이니까요."

<죄의 궤적> p.334


어린 아이를 유괴해 살해까지 한 범죄자 우노 간지는 "그 죄는 나 혼자 저지른 것이 아니다.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다."라고 말한다. 이 얼마나 부조리한 발언인가, 날카롭게 날이 서던 마음은 그의 불우한 어린 시절의 비밀을 알고 나선 얼마간은 누그러졌다.


합당한 죄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의 짙은 안개 속 봉인된 그의 기억이 풀리던 그 순간 그를 향했던 모진 마음이 아주 조금은 먹먹해졌다. 과연 범죄자는 태어나는 것인가, 혹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인가. 한 치의 치우침없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우노 간지의 과거 궤적을 좇던 이 소설은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죄와 인간은 별개라고 볼 수 있는가?



우노 간지는 가정 폭력의 생존자였다. 가정에서는 최소한의 돌봄도 받지 못한 채 폭력으로 점철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심지어 계부는 어린 그를 달리는 차로 밀어뜨려 합의금을 받아냈다. 참담한 사고로 기억 장애라는 후유증을 얻게 되었고 그후로 우노의 삶은 평범함과는 멀어진다. 지능 저하로 특수학급에서 교육받았고 일자리를 구해도 늘 무시받기 일쑤였다. 절도죄로 시작해 요시오를 유괴하고 아이의 부모에게 몸값을 요구한다. 그의 어린 시절이 과연 그가 저지른 일련의 사건들에 면죄부가 되어줄 수 있는가?



우노 간지를 쫓는 경시청 형사 오치아이 마사오, 그에게도 어린 아들이 하나 있다. 아들을 볼 때마다 참담한 마음으로 유괴범을 꼭 체포하고 아이를 가정으로 돌내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유괴 사건에 임한다. 하지만 경시청의 과실로 몸값만 강탈당한 채 유괴범을 눈 앞에서 놓치고 만다. 수사부 인력을 대거 확대하지만, 복잡하게 얽힌 야쿠자, 지방 세력 등으로 수사는 녹록치 않다. 과연 오치아이는 아이를 구해낼 수 있을까.



이 사건은 1963년 일본 도쿄에서 실제로 있었던 요시노부 유괴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작가 오쿠다 히데오는 3년여 시간을 들여 요시노부 사건을 좇았고 그 결과 8백여 페이지가 넘는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아마도 그는, 죄의 궤적을 좇으며 수면 아래 숨어 있던 범죄자의 어린 시절을 보았을 것이고 혼자로서는 도저히 내리기 어려웠을 판단을 우리에게 던진다. 범죄는 누구의 탓인가. 죄를 저지른 개인인가, 아니면 부조리를 방치한 사회인가.


가정 폭력으로 얼룩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차별과 멸시를 받았다고 해서 그런 사람 모두가 범죄자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죄의 근원으로 다가가려할수록 우노에 대한 연민이 생겨나는 것이 전연 불가해하지는 않다. 오쿠다 히데오의 정교한 이야기 속에 정신없이 빨려들어가 마지막의 순간에 맞닥들인 근원적 질문, 부조리한 토양에서 발아한 범죄는 과연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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