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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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새해가 되면 다짐을 한다. 올해는 <러셀 서양철학사>를 독파하겠노라고, <몽테뉴의 수상록>을 완독하겠노라고. 어렵고 불가능한 도전 과제인 줄 알면서도 해마다 계획으로 세우고 실패해 패배감에 휩싸인다. 이 악순환의 고리는 어떻게하면 끝낼 수 있을까. 철학에 대해서 아주 약간의 패배감을 안고 있는 나에게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엄청난 자신감을 갖게 했다. 이렇게 재미있고 실용적이며 감각적인 철학서라니!! 시대, 성별, 나라가 모두 다른 14명의 철학자들의 궤적을 쫓아 특급 열차를 타고 여행을 가는 컨셉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산뜻하고 가볍고 또 재미있다. 저자와 철학자들의 흔적을 좇아 함께 여행에 나선 그의 딸의 등장은 매 챕터마다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아름답고 미식이 넘쳐나는 파리에 가서도 맥도널드와 친구와 스냅챗을 하는데 몰두하는 열세 살의 어린 철학자는 이 책의 재미를 더해주는 감초 중의 감초다!



구글에서 '철학자'를 검색하면 수백, 수천 명의 이름이 뜬다. 나는 그중 열네 명을 선택했다. 어떻게? 신중하게. 이 열네 명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혜롭다. 각기 다른 맛의 지혜다. 이들의 삶은 방대한 시간대와 공간대에 자리한다. 열네 명 모두 죽었지만 훌륭한 철학자들은 사실 죽지 않고 다른 이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지혜는 쉽게 이동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절대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머리말 중에서 p.13


지혜를 사랑했고 그 사랑에 전염성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선별한 각기 다른 맛의 지혜를 가진 14명의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여기에 실린, 육체 없는 영혼이 아닌 신체를 가지고 활동적으로 트레킹을 하고 말을 타며 전쟁터에서 싸우고 와인을 마셨으며 사랑을 나누었던, 실용적인 철학자들은 삶의 의미를 찾는 것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사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들은 결코 완벽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몇 시간이고 같은 자리에 서서 무아지경에 빠졌고, 루소는 사람들 앞에서 몇 번이나 엉덩이를 깠다고 한다. 소로는 장미와 대화를 나누고 쇼펜하우어는 자기 푸들과도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지만 이런 결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에게서 즐거운 방법으로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목차를 살펴보고 거의 끝부분인 시몬 드 보부아르 편을 먼저 펼쳐 들었다. 어떻게 하면 보부아르처럼 잘 늙어갈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나에게 가장 많은 좌절감을 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녀의 저서들 중에서 끝까지 읽어낸 것이 별로 없다.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번번이 중도하차하게 한 그녀, 그리고 뗄래야 뗄 수 없는 장 폴 사르트르의 이야기까지 담긴 '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법'(p.433). 보부아르는 스물두 살에 최연소로 어려운 철학 교수 자격시험에 통과했다. 얼마나 근면하고 유머감각이 없었는지 비버(부지런하고 성실한 동물)라는 별명을 가졌을 정도라고 한다. 보부아르는 ' 과거를 받아들일 것, 친구를 사귈 것, 타인의 생각을 신경 쓰지 말 것, 호기심을 잃지 말 것, 프로젝트를 추가할 것, 습관의 시인이 될 것, 아무것도 하지 말 것, 부조리를 받아들일 것, 건설적으로 물러날 것,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넘겨줄 것'을 잘 늙어갈 수 있는 열 가지 방법으로 꼽았다. 젋었을 때부터 노화에 집착하고 죽음보다 노년을 더 두려워했던 보부아르는 어떻게 노년을 이해하고 잘 늙어갈 수 있었는지를 알려준다.



학자, 소설가, 작곡가, 에세이 작가, 식물학자였고, 독학자, 도망자, 정치이론가, 마조히스트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졌던 장 자크 루소는 무엇보다 산책을 즐기는 산책자였다. "나 실컷 울어야겠더.", "상상력을 이용해봐", "이게 말이 안 돼도 상관없어. 난 그렇게 느끼니까."라는 어법은 모두 루소가 남긴 유산이다. 무엇보다 휴대가능한 평온함을 선사하는 걷기와 자기 감정에 대해 사고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었다.



덜컹덜컹 흔들리는 특급 열차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타고 철학자들의 흔적을 좇는다. 장미와 대화를 나누는 괴짜 소로를 따라 월든 호수의 오두막에 들러 몰래 본가에 들러 세탁물을 맡기고 어머니의 음식을 먹는 그를 상상해본다.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며 침대 속을 늦은 오후까지 벗어나지 못했던 마르쿠스도 상상해본다. 눈부신 지혜를 가졌지만 완벽하지는 않았던 그들을 보니 지혜를 받아들이는 게 한결 수월하게 느껴진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여행은 열네 명의 철학자들로 끝날 것인가, 아니! 후속편이 시급하다! 또 다른 맛의 지혜를 가진 다른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기다리며 아쉽지만 특급 열차 여행을 마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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