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1월
평점 :

10년동안 재직하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기까지 참 많이 두렵고 힘들었다. 회사문을 나서는 순간 내가 아닌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내가 텅 비어버리는 것만 같아서 끝끝내 나 스스로 회사를 박차고 나오지를 못했다. 회사를 다닐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어 어쩔 수 없이 회사에 휴직원을 내면서 생각했다, 참 무엇 때문에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모질게 굴었던 걸까.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는 내 목소리를 외면했던 나는, 퇴사가 마치 내 삶에서 중도 하차함을 선언하는 것이나 되는 것마냥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회사를 관두었다는 것, 그 하나의 정보가 나에게 낙오자라는 낙인을 찍고 실패자라고 짜부러뜨려 납작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그 후로 오랜시간이 지난 뒤에야 어렴풋하게 감각하게 되었고,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를 읽으며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당신의 존재는 세상 어떤 도덕과 규율보다 고유해요. 나는 당신의 존재를 믿어요.(P.22)"라며 내 등을 토닥여주는 듯하다.
"내가 절대 할 수 없다고 믿었던 말을 한 날, 아빠의 폭력과 엄마의 알코올중독, 가족이 박살났던 어린 시절의 경험을 글로 뱉어낸 날, 나는 슬픔이 내 몸에서 쑥 빠져나간 느낌이 들었다. 목에 걸려 있던 가시가 눈앞에 드러났고 형체가 만져졌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 별것 아니네? 직면하면 더 고통스러울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렇지 않잖아.' 오래도록 힘들게 참아왔는데 말하고 난 후의 일상이 너무나도 평온해서 왠지 억울하기까지 했다.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p.73"
모든 이에게는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이야기가 하나쯤은 있다. 성폭력, 가정폭력, 혹은 소중한 이의 자살처럼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어 주저하다가 결국 목에 걸려버린 가시 같은 이야기. 내 목에 걸린 '가시'는 무엇일까 차분히 생각해보았다. 자발적이면서도 비자발적인 백수의 삶에 어느 정도 적응해 평온한 삶을 사는 듯 보이는 나에게도 끊임없이 아프게 하는 '가시'같은 기억이 있다. 잊힌 듯 하다가도 자신을 잊지 말라는 듯 아릿한 고통으로 기억을 되살려낸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지금, 아직은 그 기억과 대면할 용기가 생기진 않았지만 언젠가 뱉어보리라 다짐해본다. 내 목에 걸린 가시가 드디어 눈앞에 드러나는 그 순간 '어, 별것 아니네?'라며 담담히 이야기할 날이 오리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