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은둔의 즐거움 - 나를 성장시키는 혼자 웅크리는 시간의 힘
신기율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평점 :
열심히 달렸을 뿐인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때가 있다. 어디서부터 수습해야할지 전혀 모르겠고, 하루 하루 고단한 삶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처럼 멈추지 않는다. 단 하루만, 모든 것에서 해방되고 싶다고 간절히 희망해보지만 그런 생각조차 사치고 낭비인 것만 같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엉망인 하루를 견뎌내고 그런 하루들이 지긋지긋해질 때, 과열되어 폭발직전인 삶의 전원 버튼을 잠시 꺼두고 기꺼운 마음으로 고독한 나를 대면해보자. <은둔의 즐거움>은 그런 고독 속으로 당당히 걸어들어가 자신의 시간 속에서 천천히 유영하며 회복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커다란 무대에 피아노 한 대, 그 막막한 고독이 마음을 끌어당겼어요. 단 한 명의 피아니스트가 그 공간을 장악하면서 텅 비어 있던 곳이, 어느 순간부터 따뜻해지는 게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었어요.
<은둔의 즐거움>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이야기 중에서 p.59"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고등학교를 건너뛰고 곧바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한 특별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또래들과 함께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내는 것을 포기하고 고독을 택한 것이다. 그는 음악 속에 은둔하며 성장하는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고 그런 은둔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위치에 설 수 있었을 것이다. 서른 중반의 그, 이미 성공한 음악가의 대열에 들어섰지만 그에게 고독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매일 3시간씩 홀로 피아노 연습을 계속하는 그에게 은둔의 시간이란 그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것이리라.
"무라카미 하루키가 마라톤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마라톤을 하다 보면 오랜 시간 달려야 하는 극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데, 하루키는 숨이 헐떡이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절정에도 달리기의 규칙과 완주의 약속을 끝까지 어기지 않는 '자신'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
<은둔의 즐거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 중에서 p.108"
무라카미 하루키는 사후에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묘비에 쓰겠다고 했을 만큼 마라톤을 사랑한다. 마라톤 연습을 위해 러닝을 하는 동안은 작가 하루키가 아닌 마라토너 하루키가 되는 해방감과 자유로움 탓이었을까? 마라톤이라는 공간은 아마도 그에게 은둔의 공간이었을 것이고 그 안에서 재충전한 에너지로 작가로서의 삶을 더욱 확고히할 수 있었을 것이다.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삶에서 볼 수 있듯 은둔은 특별한 에너지가 샘솟는, 치유와 발전의 공간이다. 수동적이 아닌 자발적인 공간이며, 상실이 아닌 더해짐의 공간이다. 고독과 은둔은 고단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필수적 공간이기도 하다. "삶이 버거우신가요? 당신에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