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 - 깐깐한 의사 제이콥의 슬기로운 의학윤리 상담소
제이콥 M. 애펠 지음, 김정아 옮김, 김준혁 감수 / 한빛비즈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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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의사 생활, 낭만 닥터 김사부 등 병원을 배경으로 하고 의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흥행에 성공한 드라마들이 참 많다. 이유는? 재미있으니까! 타인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삶과 고통을 동고동락하는 의사가 직접 보고 들었던 이야기들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일이며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눈물샘을 자극하며 때로는 행복감도 준다.



미국의 의학박사, 생명윤리학자,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이며 동시에 소설과 시를 쓰는 작가이기도 한 제이콥 M.애펠은 20여 년동안 생명 그리고 정의에 관해 수집해온 문제적 사례들 중 79가지의 딜레마를 이 책에 담았다. 목차만 읽어봐도 참 재미있다. '내가 아빠 딸이 아니라고요?' (헉!!! 막장보다 더 막장같은 현실!), '살인자가 의사가 된다면?'(뜨악!!!), '반은 쥐, 반은 사람?'(엥?),'제 왼쪽 발을 잘라줄 수 있나요?'(헉!!!) 등등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들이라 읽어보면 참 흥미롭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고, 더 리얼하다. 이 책은 실제 이야기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대해 윤리적으로 고찰해보고 토론할 기회를 준다.



"심문 과정에서 억류자가 한 명이라도 응급처치를 받아야 할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 해군은 치료에 나설 의사가 대기하기를 바란다. 부대 지휘관은 배너에게 "자네는 장교 휴게실에 앉아 신문만 읽으면 되네. 응급 상황에 생기면 자네를 부르지"라고 말한다. 배너의 상관도 설사 응급 상황 시 손쓸 의사를 찾지 못하더라도 당국은 어쨌든 의사가 없는 채로 심문을 밀고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매너 박사가 상관이 요구한 대로 이 심문 과정에 간접 참여한다면, 윤리적일까?

<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의사가 고문 행위에 참여해도 될까? p.60"


이 사례에서 배너 박사는 포로 심문에 직접 참여하라는 요청을 받지는 않았다. 그의 역할은 가혹한 심문으로 인해 목숨이 경각에 달린 그 죄수가 죽지 않도록, 아니 '죽지 못하도록' 돕는 것뿐이다. 그렇게 되면 죄수는 목숨을 건질 수는 있으나 그런 탓에 심문을 더 많이 받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배너 박사는 고문이 계속 이어지도록 돕는 셈이 된다. 한 사람이 비윤리적 행위에 얼마만큼 연루될 때 도덕적 책임을 느껴야 할까?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의도와 의사라는 직업의 평판이 비윤리적일 수 있는 행동을 합법화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한 살배기 환자 리키는 한살배기 환자로 지난 12개월 동안 일정에 따라 모든 백신을 맞았다. 그런데 리키가 첫돌 정기검진을 받으러 온날, 애덜라인이 미키에게 홍역 예방주사를 맞히지 않겠다고 고집한다. "온라인에서 보니까 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킬 수 있대요. 게다가 홍역에 걸릴 위험도 아주 낮잖아요. 이 자그마한 몸에 그런 독을 집어넣을 이유가 있을까요?" 담당 주치의인 윌슨 박사가 애덜라인에게 리키를 치료하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윤리에 어긋날까?

<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 아이에게 꼭 백신을 맞혀야 하나요? p.101"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안아키'사태가 오버랩된다. 안아키의 창시자(?)이자 운영자가 "수두는 어렸을 적 가볍게 앓고 지나간다. 맘 같아선 전국민 수두 파티를 하고 싶다." 고 했던 말이 떠오르며 다시 한 번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충분히 많은 사람이 백신을 접종하면 백신에 면역반응이 일어나지 않은 사람도 보호받는 것은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거나 백신이 '효과'가 없었던 사람과 접촉할 가능성이 매우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면역 원리를 '집단면역'이라고 한다. 백신의 부작용 등을 이유로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것은 다른 아이들의 감염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남들이 백신을 접종하여 낮아진 위험의 이익을 누리는 무임승차적 행위이다. 종합병원이나 응급 상황이 아닌 이상 의사가 환자에 치료거부의 뜻을 나타내는 것은 법을 어기는 행위는 아니라고 한다. 



지금 우리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초유의 팬데믹 사태에 놓여 있다. 지금도 하루에 400명 이상의 감염자가 속출하고 있고 한정된 병상과 자원으로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포기해야 할지 걱정해야하는 정도의 위기가 올지도 모른다. 이런 재앙 같은 상황에서 어떤 기준으로 환자를 치료하고 배제할 것인가? 그야말로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포기해야 할까?'라는 윤리적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 책에 소개된 79가지의 이야기들은 모두 실제 일어난 이야기들이다.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가슴 한 켠이 묵직해지는 이유는 역시 실존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복잡한 윤리 문제 사이를 유영하며 고민을 시작해보자. 당신이라면, 누구를 먼저 살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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