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 -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어줄 의미 찾기의 기술
프랑크 마르텔라 지음, 황성원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을 읽고 나서 한동안 머리가 멍했다. 그동안 내 인생 '밖'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의미와 소명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해왔는지,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내 인생의 이야기들을 놓쳤고 행복을 유보해왔는지 깨닫고 서글퍼졌다. 오늘날의 서구 문화는 우리가 인생을 프로젝트로 인식하고 접근하도록 세뇌시켰다. 성공을 위해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큰 뜻을 품고 노력을 우선시하도록 학습받은 우리는 인생의 '무의미한 의미'를 찾는 '무의미한 노역'을 오래도록 해왔다. 인생은 프로젝트가 아니다. 무언가를 손에 넣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최종 결과물만을 바라보다보면 일상의 작고 반짝이는 순간들을 놓치게 된다. 인생은 프로젝트가 아니라 이야기라는 것을, 이야기는 경쟁이 아니라 그저 펼쳐지는 것임을 기억하자.
"심각한 실존의 위기에 시달리던 톨스토이는 깊이 파고들다가 자기 인생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게 뭔지를 분명히 밝히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신을 이 세상에 붙들어매주는 "두 방울의 꿀" 덕분에 우울함을 안기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그것은 바로 "가족에 대한 사랑"과 "글쓰기에 대한 사랑"이었다.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 p.221"
톨스토이를 이 세상에 붙들어매주는 두 방울의 꿀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글쓰기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당신의 두 방울의 꿀은 무엇인가? 고가의 외제차, 강남의 아파트 같은 물질적인 가치를 좇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에베레스트 등반, 세계 일주 등의 인생을 건 도전이나 통달일 수도 있다.
"나는 아이들이 내 키의 절반이라는 사실에는 아랑곳없이 아이들과 공놀이를 할 때, 또는 매일 자전거로 통근하면서 가파른 오르막 몇 개를 올라갈 때 통달이라는 기분을 느낀다. (중략) 작고 시시한 순간 같아도, 일상생활 속에서 유의미함이라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성취와 통달의 순간이다.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 p.212"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을 읽고 나서, 나는 작고 시시하지만 유의미한 성취와 통달의 순간을 더이상 흘려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낭만주의적 사상의 팽배와 코로나19 사태까지 더해져 나와 아이들이 빼앗긴 사소하고 시시한 성취였던 '볕이 좋은 카페에서 시원한 망고주스 마시기'의 행복을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물론 테이크아웃해서 차 안에서 마시긴 했지만) 우리는 망고주스를 마셨고 드라이브를 하며 하루 종일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에 돌아와선 아이들이 내 키의 절반이라는 사실에는 아랑곳없이 현관문까지 달리기 경주를 했고 환호성을 질렀으며 아이들이 먹고 싶어하는 메뉴를 저녁으로 먹고 오랜 시간동안 거품 목욕을 하는 것을 허락했다. 우리는 작고 시시하지만 풍요롭고 반짝이는 행복을 마음껏 누렸다.
"우리는 인생을 마지막에 진지한 목적이 있는 여행이나 순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중요한 것은 성공이든 뭐든, 어쩌면 사후의 천국 같은 그 마지막의 목적에 도달하는 것이 되고 말았고, 거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핵심을 놓쳤다. 인생은 음악과 같은 일이고, 그러므로 당신은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노래를 하거나 춤을 췄어야 했다.<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 앨런 W.왈츠의 말 p.227"
'어느 날 음악은 끝날 것이다.(p.227)' 아직 음악이 연주되고 있는 지금, 우리의 인생 안에 스민 가치와 의미들, 사소하고 시시하지만 경이롭고 달콤한 그 순간들을 놓치지 말자. 가족과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 아이들에 느끼는 사랑으로 충만한 시간, 누군가에게 베푸는 사소한 친절들이 우리가 찾는 의미이자 행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러니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의미 있는 순간들로 가득한 우리의 삶 안을 들여다보고 행복과 의미를 온 몸으로 껴안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것, 그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