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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 미러 - 우리가 보기로 한 것과 보지 않기로 한 것들
지아 톨렌티노 지음, 노지양 옮김 / 생각의힘 / 2021년 2월
평점 :

"트릭 미러(왜곡이 있는 거울)은 내 몸매에 단점이 없다는 환상을 제공하면서도 끊임없이 그것을 찾아내야만 하는 자기 형벌이 된다. <트릭 미러> 들어가는 말 p.17"
이상적인 여성은 아름답고, 행복하고, 자유롭고, 완벽한 능력까지 부족한 것 하나 없이 다 갖춘 것처럼 보인다. 정말 그럴까? 88년생의 에세이스트 지아 톨렌티노는 언제나 최적화중인 '인간 인스타그램'에 대해, 자신이 어렸을 적부터 사춘기를 거쳐 성인이 되기까지 책에서 만난 '순수한 여자 주인공들' 에 대해 그리고 '여성의 대관식'처럼 변해버린 거창한 결혼식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를 쏟아낸다. 하지만 그 뾰족한 말들은 전혀 불편하지 않다. 예리하고 명민한 '눈'은 그녀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디스하며 희화화하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환경에 처해있는지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차분하게 글로 써내려 갔다. 그런 공평한 태도와 눈으로 그녀 자신과 이 시대를 바로 보고 정교하게 사유를 직조해나갔다.
<트릭 미러>의 모든 글은 가볍게 시작되는 듯 하다. 재미있는 농담에 깔깔거리다가 정신 차려보면 어느 순간 그 끝도 가늠할 수 없는 깊고 투명한 지아 톨렌티노의 사유를 목도하게 된다. '우리가 보기로 한 것과 보지 않기로 한 것'에 대해, 하지만 '내가 본 것이 무엇이든, 반드시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의 목소리도 함께, 그래서 이 책은 날카롭지만 불편하지 않다.
사람들이 결혼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듯 다양한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이 이해라는 것이 쌍방향으로 흐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트릭 미러> 9장 결혼, 나는 당신이 두려워요 p.411
"이 결혼이란 게 너무 투명하게 멍청하다는 생각까지 가는 거야. 남자가 여자에게 청혼한다는 것부터 그래. 통계적으로 남자가 더 이익을 얻고 여자가 비혼일 때보다 덜 행복한 상황에 남자가 들어갈 준비가 될 때까지 여자는 꾹 참고 기다려야 해요. 그리고 촌스러운 반지를 끼는 것도 여자지. 그깟 반지, 남자의 소유물이라는 상징인데 여자는 받고선 좋다고 헤벌쭉해야 해. 그리고 새 인생이라는 의심스러운 걸 직접 경험을 해봐야 한다고 하는데 그게 여자의 인생 전체를 얼마나 좌우하는지 알면..." <트릭 미러> p.414
88년생에 사실혼 상태의 남자친구가 있는 그녀에게 "대체 언제 결혼하냐?"라고 묻는 수많은 지인들에 아마도 깊은 '빡침(?)'을 느꼈을지도 모르는 터 <트릭 미러>의 9장은 결혼에 대해 우리가 보기로 한 것과 보지 않기로 한 것에 대해 지아 톨렌티노가 작심하고 칼을 든다. 우리나라에서 소위 '스.드.메'로 표현되는 웨딩 비용의 거품과 환상을 그녀는 방대한 자료를 통해 얼마나 상업적인지, '평범한 여성의 대관식'이라고 꼬집기도 한다.
"낮에는 요리와 청소를 하고 저녁엔 그보다 더 많은 더러운 접시를 닦고 완전히 지쳐서 잠에 곯아떨어지겠지. 15년동안 A만 찍힌 성적표를 받은 여학생에게 이렇게 암울하고 헛된 인생이 있을까." 에스더는 남자친구의 엄마가 몇 주일 동안 뜨개질한 아름다운 러그를 벽에 걸지 않고 부앜 바닥에 깔았던 장면을 기억한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 러그는 "더러워지고 납작해져서 아름다운 문양은 알아볼 수도 없었다." 에스더는 생각한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남자가 결혼 전에 여성에게 장미와 키스와 레스토랑에서의 저녁 식사를 가득 안기면서도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그 아내가 미세스 윌라드의 부엌 매트처럼 자기 발밑에서 납작해지길 은밀히 바라고 있다는 것을." <트릭 미러> p.176
우리가 결혼에 대해 보기로 한 것과 보지 않기로 한 것, 어쩌면 결혼이 그 아름다운 외양 속에 숨기고 있는 모습을 한 번쯤은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내", "엄마"라는 역할과 나 자신이라는 온전한 자아가 양립할 수 있는지, 결혼 안에 너무나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 젠더 불평등도 말이다. 순백의 드레스, 화려하고 우아한 머리 장식, 다이아몬드 반지, 화려하게 장식된 버진 로드를 걸어나가면 점차 사라져가는 나의 존재. 아름다운 결혼에 정신을 빼앗긴 순간, 순식간에 나는 잡아먹히고 만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이 결론이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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