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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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나베 씨의 소설을 읽는 것은 이와 비슷하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그렇지만 너무 멋져.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작품해설 p.292"


일본의 국민작가이자 연애소설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다나베 세이코의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수많은 물음표들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소설의 맨 마지막 작품해설을 읽는 순간 그 물음표들은 일순간에 해소되어버렸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그렇지만 너무 멋져' 다나베의 소설은 도덕적 잣대라는 색안경을 끼고 봐서는 그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가 없다. 모든 허울을 벗어던지고 소설 그 자체로 대면했을 때야 비로소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다나베라는 하나의 장르가 가진 맛! 사랑과 죽음, 그리고 이별은 극적이라는 면에서는 서로 맞닿아 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둘만의 사랑이었네

우리 누운 관 위에 풀이 피어나는 날에도

이 사랑 아는 이 없으리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p.102"


우네는 이혼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29살의 워킹우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이복언니의 아들 유지가 어머니의 심부름차 이모인 우네의 집에 방문한다. 유지는 잘 정돈된 싱글녀가 사는 모습에 이끌리고 또 우네의 웬지모를 섹시함에 또 이끌린다. 우네 역시 어리지만 귀여운 유지가 마음에 든다. 이복 언니의 아들과의 로맨스라니, 속으로는 뜨악했지만 또 안될 건 뭔가! 이 대목에서 6살난 아들을 힐끔 쳐다보곤 단호하게 '내 아들은 안돼!'라고 생각했으나 '나에겐 이복자매가 없고, 또 소설은 소설일 뿐이니까!'라며 이 책의 묘미를 좀 더 즐기기로 했다. 유지와 함께 떠난 늦은 여름 휴가, 그 곳에서 우네와 유지는 사랑을 나눈다. 날 것 그대로의 열락을 즐기는 그들 위로 펼쳐지는 파국적인 저녁노을. 우네는 그런 순간을 산꼭데기 검은 땅에 커다란 구멍을 파서 사랑의 관을 묻는다는 시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그리고 유지와 맛있는 생선 요리에 향긋한 와인을 곁들인 행복한 순간, 우네는 상냥한 미소를 흘리며 유지와 그 순간을 통채로 사랑의 관에 담아 묻는 상상을 한다.



"깊은 밤에 조제는 눈을 뜨고, 커튼을 열어젖혔다.

달빛이 방안 가득 쏟아져 들어왔고, 마치 해저 동굴의 수족관 같았다.

조제도 츠네오도 물고기가 되었다. 죽음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죽은 거야'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p.70"


뇌성마비로 하반신이 마비된 조제의 본명은 구미코다. 그녀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을 좋아했고, 그녀의 소설에 주로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인 조제를 좋아했다.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던 그 이름이 그녀에게 츠네오라는 듬직한 남편을 가져다 준 걸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호랑이를 보고싶다던 조제, 그런 그녀를 위해 츠네오는 친구에게 차를 빌려 동물원에 간다. 그리고 조제에게 호랑이는 하나의 상징과도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이지만 좋아하는 남자가 곁에 있으면 안길수가 있다고. 아마도 세상의 모든 것들이 조제에겐 호랑이와 같지 않을까? 그런 그녀가 언제든 원하면 안길 수 있는 존재가 생긴 것이다.


츠네오와 조제는 부부의 연을 맺는다. 호적 신고도 하지 않았고, 결혼식도, 피로연도 그리고 츠네오의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았지만 둘은 신혼여행을 떠난다. 그 곳에서 해저 수족관의 물고기들을 보게 되는 조제, 조제는 행복한 그 순간에 수족관을 유영하는 물고기들의 모습에서 죽음의 세계 안에 있는 자신과 츠네오를 발견한다. 사랑하는 츠네오가 곁에 있어 행복하지만 츠네오가 언제 떠날지 모르는 상황. 하지만 조제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완전무결한 행복이라 생각한다. 조제의 마음은 행복과 죽음에게 같은 공간을 내어주었기 때문에 사랑은 행복하면서도 죽음과 같은 것. 매일 하루만큼의 생명을 덜어내고 죽음을 향해 가는 우리가 간과하는 사실은, 행복한 시간이든 불행한 시간이든 같은 속도로 흐르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라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조제는 행복을 유보하지 않는다. 하루만큼을 살아내고 하루만큼을 행복해하며 또 그만큼의 죽음을 느낀다. 본래 인생과 사랑은 달콤한 만큼 잔혹한 면이 있으니까. 그런 인생의 본성을 포착해내고 쉬운 언어로 써내려간 다나베 세이코가 왜 국민작가이며 후배 작가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존재인지 알 것 같다. 음탕한 듯 하면서도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지 않는 관능적인 묘사와 사랑의 절정에서도 거침없이 그 사랑을 내팽개치는 잔혹함과 인생을 달관한 듯한 여유는 기본이다. 과연 나는 불륜을 저지른 남편이 커피잔까지 챙겨서 떠나는 와중에도 마지막 도시락을 챙겨줄 수 있을까? 전혀 멋지지 않은 상황에서 멋질 수 있으려면 수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다나베 세이코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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