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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누군가가 근처에 산다
여태현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0년 10월
평점 :

아마도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그리움'이라는 감정은 퍽 낯선 것이기도 하고 가닿기 힘든 호사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너무도 정신없는 동적인 일상과 부딪히느라 그리움이라는 정적인 감정을 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리운 누군가가 근처에 산다>의 섬세하면서도 낮은 채도의 문장들을 읽으며 나에게도 누군가를 그리워하던 시절이 있었음을, 잊고 있었던 '그리움'이라는 감정과 함께 기억해내고 또 한 동안 끊어던 나와의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어 참 고마운 책이었다.
죽을만큼 사랑했던 사람이나, 나의 온 세상을 온통 한 점으로 귀결시키던 소설이 있었다.
<그리운 누군가가 근처에 산다> p.16
인생엔 시절이 있다고 한다. (P.16)그 시절마다 죽을만큼 사랑했던 사람, 소설, 영화도 계절처럼 달라진다고. 시절과 계절이 지났음을 인정하고 미련을 버리기란 누구에게든 어려운 일인듯 하다. 이미 세 아이의 엄마가 된 나에게도, 죽을만큼 사랑했던 사람도, 나를 죽일 듯이 집어삼키던 이별도 있었다. 내가 지나온 청춘시절의 많은 사건들의 기억이 옅어졌지만 어째서인지 사랑과 관련된 기억들은 아직도 '혁혁하게' 지워지지 않고 저장되어 있다. '과거에 사랑했던 것들과 그것들에게 할애한 시간에 사죄하며 지냈던(p16)' 작가님과는 반대로 주로 사죄를 받는 입장이라서였을까? 사랑에 미숙했던 만큼 헤어짐도 잘 해내지 못했던 나는, 항상 느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 돌이켜보아도 느껴지는 달라진 사랑의 온도를 그 때엔 왜 그렇게 몰랐던건지, 젊은 시절의 나를 떠올리곤 엄마미소를 짓는 나를 발견했다.
행복 앞에 '적당한' 이 붙은 건 내가 어떤 지점에서 행복을 타협했음을 뜻하는 거였다.
<그리운 누군가가 근처에 산다> p. 24 중에서
아이를 키우는 삶은 결핍의 연속이다. 아이의 수유텀에 맞추어 쪽잠을 자며 충분하지 않은 수면시간을 갈망하며 군가 SNS에 올린 볕이 좋은 테라스카페에서 브런치 먹는 사진을 보며 나에게 없는 여유로운 시간을 부러워해야 하는, 무언가는 도무지 충족되지 않는 삶이다. 그러다보니 정말 우연히 찾아온 사소한 일들에 행복을 느끼게 된다. 육아로 인해 드는 결핍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불행의 의미와는 결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이 책에 나오는 '적당한' 행복이라는 대목에서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운 누군가가 근처에 산다>은 섬세한, 누군가를 위해 쓴 일기장같다. 본래 일기란 자기 자신을 위해 쓰는 글이어야하지만 어쩐지 이 책은 정성스럽게 쓴 일기장같다는 생각을 했다. 낮은 채도로, 그 채도의 균형을 유지한 색색의 일상으로 채워진 문장들, 고심해 고른 단어들과 문장들로 차린 정갈한 식사를 대접받는 느낌도 들었다. 한 입 뜨면 몇 년전 내가 사랑했던 기억, 이별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소소한 일상으로도 이렇게 멋진 문장들이 나올 수 있다니, 여태현 작가님의 다음 글, 다음 책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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