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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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다"는 말을 달고 사는 요즘이다. 세 아이를 키우다보니 '나 자신에게 쓸' 시간이 없는 건 아마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 날도 시간 참 없다며 아이들을 재우고 고된 일상의 끝자락에 홀로 앉아 반쯤은 졸며 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을 읽고 있었다. 등장 인물들의 재정 상태에 대해 굉장히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소설의 도입부를 보고 문득 숫자 몇 개로 가난과 부가 판가름나는 게 서글퍼졌다. 나는 돈보다는 시간이 간절한 사람이기에 나의 시간에 대한 빈곤함을 구체적으로 계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쏟아붓고 있는 나의 시간들, 나는 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을 아이들에게 빚진 것인가? 얼마나 더 갚아야 이 거대한 부채는 끝이 날 것인가? 한 아이를 기르는 데 온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옛 말이 있다. 마을 사람들 모두의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을 오롯이 엄마 혼자의 시간으로 부담해야 하니 부채의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아이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나이까지 엄마가 필요한 시간은 대체 얼마나 될까? 나는 딱 그만큼의 시간을 빚진 셈이다. 장난처럼 시작한 셈이었지만 난 나 스스로가 시작한 장난이 마음이 상해버렸다.


동생이 학자금 대출을 대신 갚지 않았어도

아이들을 위해 살 수 있었을까.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p.78


어렸을 때부터 똑똑하고 야무졌던 동생은 주인공의 뒤늦은 출발을 응원해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동생은 학자금 대출을 갚아주고 보편의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언니의 어깨를 쓸어주며 따스하게 손을 잡아주었다. 그런 동생에게 얼마간의 부채의식을 가지고 빚을 갚고 싶었는지도 탓일까. 동생이 가정 폭력에서 탈출하도록 이혼을 종용했고 다시 출근하는 동생을 대신해 조카들을 돌보기 시작한 주인공에게 시를 쓰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쓰고 싶지만 써지지 않았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p.42

그녀는 아이들의 엄마인 동생을 대신해 주 양육자로서 최선을 다했고 그러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마치 임무를 방치한 것처럼 불안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헤어짐을 택했다. 자신을 안으로 갉아먹기만 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결국 그녀는 텅 비어 버렸다. 쓰고 싶지만 써지지 않아 언어를 직조하지 못해 패배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인생은 길고 넌 아직 피지 못한 꽃이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p.151


나는 피지는 못하고 지기만 하는 사람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지고 그래서 또 내 시간을 기꺼이 내어준다. 나는 아마 주인공처럼 도망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의 주인공 덕분에 나 역시 누구 엄마이기 이전에 온전히 나 자신이었을 때가 있었다는 걸 기억해내게 되었다. 왜 기억해야하는지 알게 되었다.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던 나의 시간을 아이들과 나눠쓰는 것은 조금은 아프지만 행복한 일이다. 나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하지는 못하지만, 나 아닌 타자를 스스로에게 하던 것보다 더 큰 사랑으로 보듬을 줄 알게 되었다.


나는 오늘도 아이들을 재우고 홀로 앉아 책을 펼친다. 책을 읽고 필사를 하다보면 내 온 몸의 세포들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세 아이의 욕구에 맞춰 빠르게 빠르게 달음박질치던 세포들이, 나를 거칠게 재촉하던 온 몸의 신경들이 제 리듬을 찾아 넘침과 부족함이 없이 딱 맞아지는 조정의 시간, 나는 고단함에 얼마간은 졸게 되지만 펼쳐둔 책을 몇 줄이라도 보다가 막둥이의 달큰한 땀냄새를 맡으며 옆에서 잠이 든다. 이것이 내가 싸워 이겨는 법고, 내 삶에 몰입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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