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레이하 눈을 뜨다 <5+5> 공동번역 출간 프로젝트 3
구젤 샤밀례브나 야히나 지음, 강동희 옮김 / 걷는사람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소설의 첫 도입부에서 줄레이하를 괴롭히는 악독한 시어머니 우프리하와 짐승같은 남편 무르타자 때문에 이 소설의 끝을 보지 못하는가 싶었다. 대한민국의 시월드는 전 세계 어딜가도 맞수가 없는 천하무적일 것이라 생각해왔었는데 러시아 율바시의 시월드도 만만치 않았다. 소설에 나오는 악마같이 교활한 시어머니와 답답한 효자의 콜라보도 혐오스럽긴 했지만 이들에게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는 줄레이하가 너무나도 답답했다! 하지만 소설의 제목대로 줄레이하가 곧 눈을 뜰 것이다, 사이다 전개가 있을 것이다 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꾸역꾸역 읽어냈더랬다. 너무나도 불행한 줄레이하, 그 사실을 줄레이하만 모른다. 소설의 중반부인 시베리아로 강제이주하게 되면서부터는 고생은 하게 되지만 줄레이하는 더 이상 불행하지는 않았다.


이 소설은 1930년대의 시베리아 강제 이주를 시작으로 제 2차 세계대전까지를 배경으로 한다. 줄레이하는 15살의 나이로 부농인 무르타자에게 시집을 가고 네 명의 딸을 낳지만 낳는 족족 모두 죽어버린다. 우프리하는 항상 나쁜 일들에 대한 예지몽을 꾸었고 그것들이 어느 정도는 현실과 맞아떨어졌기에 더 불길했다.머지않아 세 명의 불의 천사가 나타나 줄레이하를 지옥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그런 꿈을 꾸었노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며칠 후, 길을 묻는 붉은칸국인들이 또 다시 재산을 빼앗으러 온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반항하던 무르타자는 그 자리에서 사살된다. 무르타자의 모든 재산은 몰수되고, 줄레이하는 시베리아행 수송기차에 탑승한다.


줄레이하가 눈을 가늘게 뜬다. 집들도, 사람도 많다.

<줄레이하 눈을 뜨다> p.185


줄레이하는 율바시를 떠난 후 모든 것에 눈을 뜬다. 시베리아로 강제이주하던 중 레이베라는 의사와 우정을 쌓게 되고 그를 도와 간호사일도 척척 해내며 사냥을 잘해 사냥노동조합에도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사랑에도 눈을 뜬다.

그녀는 자주 우프리하의 환영에 시달렸다. 우프리하는 망상 속에서도 그녀를 저주하고 괴롭혔지만 줄레이하는 더 이상 참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녀 스스로를 변호하고 싸우며 때로는 우프리하를 안고 펑펑 울기도 했다. 줄레이하를 억압했던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지워졌다. 대신 새로운 것이 생겨났고, 그것은 마치 홍수가 지난해 저장해둔 불쏘시개와 썩은 나뭇잎을 쓸어간 것처럼 두려움을 씻겨내기(p.599) 시작한 셈이다.


시베리아 타이가에서의 삶은 척박하기 그지없었다. 먹을 것은 부족했고 아이들은 죽어나갔다. 죽음이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먼지가 되어 옷 위에 안고 공기가 되어 폐 속으로 침투한다(p.194)고는 하지만 강제수용소에서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죽음과 가까운 듯 보였다. 하지만 줄레이하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삶을 꾸려나가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눈을 뜨게 된다.


아픔을 억누르지 못하는 줄레이하, 아픔이 모든 것을 잠기게 한다.

<줄레이하 눈을 뜨다> p.687


줄레이하에게 찾아온 하나의 이별과 하나의 사랑, 줄레이하에게는 이별도 아프고 사랑도 아픈 일이었다. 이별은 줄레이하 안에 있는 아픔들이 솟구쳐 나와 모든 것을 잠기게 했고 그녀까지도 잠식해버린다. 숨쉬는 것조차 아프고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고 느끼고 싶지않다고 생각하는 줄레이하, 그리고 또 다시 찾아온 사랑도 역시나 그녀를 아프게 한다. 사랑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모두를 구원해주듯, 줄레이하를 살게 만든다.

줄레이하를 따라 고된 여정을 함께 하다보니 700페이지나 되는 소설이 어느 새 끝나버렸다. 꼭 한 번 읽어볼만한 소설이기에 가능하면 소설의 내용을 서평에 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모두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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