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개가 달려가네요 <5+5> 공동번역 출간 프로젝트 2
유리 파블로비치 카자코프 지음, 방교영 옮김 / 걷는사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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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내가 접해본 러시아문학의 이미지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나 미하일 불가꼬프, 레프 톨스토이 등의 작품으로 대표된다. 암울하고 울적한 분위기 속에서 가난하거나 빼앗긴 사람들, 마음이나 몸이 아픈 사람들이 주인공인 작품들을 읽다보면 내 기분도 한없이 어두워지기도 했다. 19세기 이후의 러시아 문학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던 차에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한국과 러시아 문학작품을 공동 번역해 출간하는 프로젝트하에 몇 편의 작품들이 출판사 '걷는 사람'을 통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작품들 중 가장 관심이 갔던 것은 단연 유리 카자코프의 <저기 개가 달려가네요>였다. 일단 제목부터 특이해 내 눈을 끌었지만 '산문 쓰는 시인으로 불린 단편 작가'라는 점에서 궁금증이 일었다.

<저기 개가 달려오네요>에는 총 14편의 단편이 담겨 있다. 서정적이면서도 투명한 느낌이 드는 작품들이 많아, 내가 기존에 러시아문학에 가지던 고정관념을 깨주기에 충분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볼 수 있는 비극보다는 <파랑과 초록>에 나오는 유리알같은 첫사랑과 순수했던 사랑이 권태로움으로 바뀌는 찰나,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주인공의 비극이 내 입맛에는 더 맞았다.


사랑에 빠지는 정확한 시점을 알아내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파랑과 초록> p.34


<파랑과 초록>의 릴리아와 주인공이 서로에게 서서히 물들어간다. 사랑에 빠져 머리가 핑 돌아버릴 것처럼 매순간이 행복하다던 주인공은 어느 새 릴리아의 눈에서 권태로움을 발견한다. 그녀를 쫓지만 그녀는 자꾸만 미끄러져 떠나간다. 결국 릴리아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마지막으로 만난 두 사람, 릴리아는 "너는 나한테 꽃 한 송이를 안 주더라!"라며 떠나간다. 삶이 주는 잔인함을 느끼며 그래도 인생이란 참 멋진 것이라는 주인공, 지금쯤은 연애하는 법을 좀 터득했으려나? 둘의 모습을 보면서 사랑에 서툴던 내 과거의 모습도 떠올랐다.


숨이 막히고 답답해지고, 날카로운 그리움이 밀려들었다.

<저기 개가 달려가네요> p.148


모스크바에서 기계공으로 일하는 크리모프, 그는 오랜만에 휴가를 얻어 낚시를 떠나기 위해 버스를 탑승한다. 옆자리에 앉은 어둡고 음울한 실루엣의 여자, 뭔가 사연이 있어보인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채지만, 크리모프는 오로지 자신의 낚시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있다. 크리모프에게 담배를 빌리며 입술과 손을 심하게 떨며 무엇인가를 자꾸만 털어놓고 싶어하지만 크리모프는 전연 관심이 없다. 그러던 순간 갑자기 등장한 길거리의 개! 크리모프가 "저기 개가 달려가네요!"라며 외친다. 여자와 크리모프는 완벽하게 단절된 채 여자는 떠난다. 낚시터에서 3일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낸 후 돌아오는 차 안에서 크리모프는 크고 아름다우며 슬픈 무언가가 그의 위에, 들판에 강 위에 멈춰 있었지만, 이제는 사라져버버렸다. (p.149) 크리모프가 좀 더 그녀에게 관심을 가져주었더라면 결말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카자코프의 문장들은 한없이 유려하고 아름답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개인주의와 이기심에서 비롯되는 무관심, 권태와 그로부터 빚어지는 소외와 고독은 어쩌면 인생의 일부분이기에 존재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듯도 하다. 이러한 인간의 삶을 말없이 안아주는 것은 대자연이다. 자연과 소통하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 일이야말로 시가 하는 일이 아닐까? 산문쓰는 시인 카자코프, 그의 서정적인 문장들에 안겨 힐링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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