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안바다 지음 / 푸른숲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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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들의 1년을 버티게 해주었던 여름휴가 바캉스, 깜짝 선물같은 대체휴일에 떠났던 여행 등 고단하고 단조로운 일상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게 해주던 여행이라는 존재가 우리의 삶에서 완벽하게 사라져버렸다.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하루에도 몇 차례나 실어나르던 비행기가 멈추듯 우리가 확신하던 그 모든 것들이 멈추어버렸고 모호해졌다. 단 하나 명확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여행을 되찾게 되더라도 언젠가 또 다시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또 다시 그것을 잃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은 이런 밀폐된 일상 속에서 집으로 여행을 떠나는 법을 알려준다. 나는 아마도 나의 거실과 침실, 발코니와 주방을 제대로 만나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살던 집, 내가 사는 집으로 나는 얼마나 제대로 떠나봤을까.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p.16


집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이미 많은 예술가들에겐 익숙한 행위였던 것 같다. 18세기 후반의 작가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는 가택연금형을 선고받아 42일동안 자신의 방을 여행하고 <내 방 여행하는 법>을 썼고, 마르셀 프루스트는 침대에 누워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글을 써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성했다. 우리도 현관, 거실, 침실, 화장실, 주방 그리고 욕조, 침대, 의자까지 집안의 구석구석으로 매일 떠나고 매일 도착할 수 있다.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으로 우리의 거주지로 여행 떠나는 법에 대해서 알아보자!


가로세로 1미터 남짓한 유예의 공간, 현관

현관은 공항을 닮았다. 현관과 공항의 물리적 크기는 전혀 닮지 않았지만, 머뭇거릴 수 있는 곳, 한 번 더 숙고해볼 수 있는 곳, 엉거주춤 서 있을 수 있는 곳, 떠나는 누군가를 잡을 수 있는 곳, 떠나보내기 싫어하는 누군가에게 잡힐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현관과 공항의 심리적 크기는 닮았다. 가장 짧게 머무는 곳이지만 가장 긴 여운을 남기는 현관은 우리의 작은 공항이다.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p.37


충분히 무력할 수 있고 마음껏 항복할 수 있는 공간, 침실


침대에서는 충분히 무력할 수 있고 마음껏 항복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고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침대가 오로지 무력함만을 위해 준비된 공간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침대는 가장 많은 것을 상상하며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는 공간이기도 하다.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p.73


코로나19로 인해 두문불출하는 나와 아이들에게 집은 답답하고 재미없는 곳, 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틈만 나면 신발을 들고 와서 밖으로 나가자며 비언어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며 때를 쓰는 2살배기 막내와, 틈만 나면 놀이터에 놀러가자며 울부짖는 큰 아이들에겐 아마도 집이 감옥같은 곳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을 읽고나니 집은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에게 굉장히 훌륭한 여행지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아이들에게 김밥 도시락을 싸주고 책상 의자를 나란히 놓아 만든 상상의 기차에 태워야겠다. 그리고 도착한 베란다에서 멋진 뷰를 감상하는 전망대에 왔다고 이야기를 할 것이다. 내일만은 침대에서 점프하는 것을 허락하고 키즈카페에 왔다고 상상하게 할 것이다. 재미있는 그림책이 가득한 방에서는 도서관에 왔으니 좋아하는 책 2권만 빌리라고 이야기하고 저녁엔 욕조에 뜨끈한 물을 가득 담아 수영복을 입은 아이들 손목에 도장을 찍어주며 1시간 후에는 집에 돌아가야 한다고, 아쿠아월드에 온 걸 환영한다고 이야기해주어야겠다. 특별할 것 없는 집이지만 아이들의 상상력이 더해지면 더없이 멋진 여행지가 될 것이다. 혹시 집 안이 답답하고 권태롭다고 느껴진다면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을 꼭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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