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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셜리 클럽 ㅣ 오늘의 젊은 작가 29
박서련 지음 / 민음사 / 2020년 8월
평점 :

유대를 잃어버린 시대, 소외감이 만연하는 시대, 서로를 침범할 수 없는 시대다. 11월 2일, 이슬람력으로 치면 첫날 새벽 멜버른에 도착한 셜리는 생각한다. 한 세계가 끝나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는 새로운 날 미지의 대륙에 발을 디딘, 자신의 근사한 우연을 자축하며 주인공이 된 기분을 만끽하리라! 하지만 냉담한 표정으로 자꾸만 거절하는 사람들로 셜리는 이내 주눅이 들고 멜버른컵 페스티벌을 즐기는 군중을 피해가며 큰 캐리어를 끌고 호스텔로 향한다. 박탈감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지만 그렇다고 기쁘거나 즐겁지도 않은 설명하기 힘든 아주 작은 슬픔을 느끼면서. 하지만 사랑스럽고 셜리는 영화 인사이드아웃의 명대사 "잘못된 일은 신경쓰지마. 항상 즐거움으로 되돌릴 방법은 있으니까!"처럼 빨간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외국인들을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볼링핀이라고, 28일치 캐리어로 스트라잌을 만드는 상상을 한다.
셜리와 논-셜리 틈바구니에서 보라색 목소리 S를 발견하다.
멜버른 커뮤니티 페스티발에서, 셜리는 셜리들을 발견한다. 셜리 M, 셜리 O, 셜리 J...셜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만 가입할 수 있는 <더 셜리 클럽>의 행렬을 발견하곤 셜리는 셜리들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이윽고 퍼레이드가 끝나 그녀들을 따라 도착한 한 펍, 한국인 셜리 그러니까 한국이름이 설희인 그녀는 3/4은 한국인이고 1/4는 영국인인 S를 만난다. 이상하게 목소리에서 보라색이 느껴지는, 그의 도움으로 셜리클럽의 명예회원으로 가입해도 좋다는 승낙을 받고, 또 미치게 가슴설레는 로맨스에 입문하게 된다!
그날부터 셜리는 평일엔 치즈공장에서 일을 하고 토요일은 더 셜리 클럽 활동을 한후 일요일에 S를 만나 데이트를 한다. '도라'라는 아주 예쁜 경쟁상대가 나타나 삼각관계가 되는가싶더니 S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다시 못 만나면 그때야말로 정말 미칠 수도 있어.
<더 셜리 클럽> P.151
갑자기 사라진 S와 S의 흔적을 찾기 위해 친구 피터의 페이스북을 뒤지고 비행기표를 예매하는 셜리, 룸메이트는 그녀에게 "미쳤구나"라는 한다. 이에 셜리는 '다시 못 만나면 그 때야말로 정말 미칠 수도 있어."라고 말한다. 과연 셜리는 S를 찾아낼 수 있을까? S는 갑자기 왜 사라졌을까? 소설 중반부가 되자 "나 정말 셜리와 S의 이야기를 즐기고 있잖아!"라고 자각할 만큼, 셜리가 S를 사랑하는만큼 <더 셜리 클럽>을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만나고 싶어 했는지를 나는 킬로미터 단위로 환산할 수 있어요. 당연히 그건 내 마음의 스케일과 디테일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이 아니지만, 공평하게 말하자면 그건 정확하게 표현하는 게 불가능한 정보잖아요. 사실 이건 힌트에 가까운 거죠.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는 마음을, 느낌을, 측정 가능한 단위에 맡기는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압도되게 마련이니까. 압도적인 숫자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마음이 그 뒤에 있다는 걸 누구나 상상할 수 있잖아요. <더 셜리 클럽> P.136
셜리 곁엔 항상 클럽이 있다는 걸 기억해요.
<더 셜리 클럽> P.153
정말 유대를 잃어버린 시대, 소외감이 만연하는 시대, 서로를 침범할 수 없는 시대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런 외로움은 나 자신이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차가운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그런 냉담한 표정을 지었던 게 아니라 내 마음이 그랬던 게 아닐까(P.19)라던 셜리의 말처럼 말이다. 3리터 정도의 땀을 흘려가며 <더 셜리 클럽>의 퍼레이드 행진을 따라갔던 셜리, 그 끝에서 만난 보라색 S와 많은 셜리라는 친구들까지, 우리도 조금만 마음을 연다면 달달하고 따스한 수많은 필연들이 우연을 가장한 채 다가오지 않을까?
<더 셜리 클럽>을 덮으며 쭉 기지개를 폈다. 보랏빛 공기가 나를 가득 채우는 것 같다. 가을과 겨울이 손을 잡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오는 찬 계절인데 왠지 모르게 내 마음엔 봄이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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