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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 환상적 모험을 통한 신랄한 풍자소설, 책 읽어드립니다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김문성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4월
평점 :

내가 어렸을 적 보았던 동화 <걸리버 여행기>는 걸리버가 항해 도중 엄청난 풍랑을 만나 우연히 닿은 소인국과 거인국에서의 일화만이었다. 걸리버가 잠깐 잠든 사이, 위협적인 침입자라고 판단한 소인들이 그의 머리카락부터 팔다리까지 가늘고 긴 줄로 단단히 고정시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걸리버에게 아픔이나 줄 수 있을까 싶은 가늘고 짧은 화살을 보며 웬지 모르게 귀엽다는 생각을 했던 동화 <걸리버 여행기>가 '순한 맛'이라면 완역본은 통렬하게 '매운 맛'의 풍자 소설이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걸리버는 16년동안 4번의 항해를 하고 매 항해에서 풍랑을 만나거나 배를 빼앗겨 무인도에서 버려지는 등의 불운으로 그 때마다 소인국인 릴리퍼트, 거인국 브롭딩낵, 떠다니는 성 라퓨타, 말의 나라 휴이넘을 여행하게 된다. 그리고 단순한 소설이라고 하기엔 각 나라의 위치를 나타내는 지도, 지리적 특성 등 굉장히 디테일하게 묘사되고 있어 이보다 약 60년정도 앞서 작성된 <하멜표류기>등의 여행기의 느낌이 물씬 난다. 이 당시 먼 나라까지 항해해 식민지를 건설하던 사회적 분위기를 생각하면, 소인국이든 거인국이든 이런 나라가 어디엔가는 존재할 수도 있겠다고 믿는 사람도 있었을 것 같다. 그만큼 굉장히 사실적으로 기술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소설이다.
소인국 릴리퍼트과 거인국 브롭딩낵 편에서도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갈등에 대한 풍자라든가 국왕의 욕망, 정치적 세력가들의 정치 입문과정 등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이어지는 라퓨타와 휴이넘편은 더 볼만하다. 라퓨타 기행편에서는 과학에 대해 아주 제대로 저격했다. 전혀 현실세계에 적용할 수 없는 말도 안되는 비현실적 과학실험을 하는 라퓨타섬의 과학자들을 통해 그 당시 영국에서 유행하는 과학 만능주의에 대해 비판하고 저속하고 비열한 인간인 야후를 지배하는 말의 나라인 후이넘국에서는 겉모습은 본인과 동일하나 짐승과도 같은 야후를 통해 인간의 욕망뿐만 아니라 인간 자체를 타락한 존재로 보며 후이넘, 즉 말에게 감화된다. 그러나 야후와 생김새가 똑같다는 이유로 후이넘 사이의 갈등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있어 쫓겨나게 된다.
작가가 이야기를 하기 앞서 밝힌 이 소설을 기록한 이유는 '이 나라 야후들의 칭찬을 받으려는 게 아니라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려는 소망 때문'이며 이 소설로 인해 정부의 책임자가 화가 날수도 있고 작가인 자신 및 출판사가 처벌을 받을 수도 있으며 출판사들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고 적고 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된지 200년이 넘어서야 완역본으로 만나볼 수 있었으니 200년도 전의 유럽사회에 주었을 파장은 상상할 만 하다.
초등학교 시절, 동화책 <걸리버 여행기>를 즐겼던 분들에게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해드리고 싶다. 누군가에 의해 마음대로 재단되고 미화된 동화책 <걸리버 여행기>가 아닌 제대로 된 풍자소설 <걸리버 여행기>를 읽어보는 것이 그 당시 목숨을 걸고서 이 소설을 썼던 조너선 스위프트에 대한, 우리에게 잠시동안이지만 어린 시절 모험을 선사해준데에 대한 하나의 '의리'와 감사함의 표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