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규칙 - 5천 년 중국, 숨겨진 부패의 역사
우쓰 지음, 도희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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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사로잡혀 있던 감정은

벌레가 온몸을 기어다니는 듯한, 개운치 않은, 불길한,

그리하여 급기야 더러운 그것이었다.

뭐 그렇다고 딱히 내가 깨끗한 놈도 아니고,

혹시 누가 흘리고 간 동전 몇 푼이라도 길바닥에 떨어져 있으면

못 본 체 할 위인도 못 되는 처지에 말이다.

책을 덮은 후에야 범부인 나조차 그런 감정에 휩싸일 수 있었던 원인은

역사의 도도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아무리 더러운 역사일지라도, 부패의 역사일지라도 그 무게는 실로 엄청나

반드시 그 인과관계를 후대에 남겨준다는 교훈,

관료들의 더러움에 치를 떨면서도 차라리 새까만 어둠속에서 환한

갈길을 찾듯 어떤 한 점이 보였던 것이다.

이 책의 강점은 바로 그것이다.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박학은 물론이고 그 방대한 자료,

그리고 우리의 현재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느껴진다.

겉표지에도 나와 있는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의 유언은

그래서 더욱 처절하다.

조종을 볼 낯이 없어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자신의 신체는 훼손해도 좋으니

백성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도록 하라는 자기 반성,

우리는 여전히 그러한 고위직의 참회를 듣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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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십걸 1
세실리 본 지게사 지음, 윤정숙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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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말 럭셔리하다.

럭셔리하다고 해서 무슨 사치스럽다거나 지나치게 소비를 조장한다거나

그런 의미는 아니다. 주인공들이 럭셔리하고

주인공들의 생각들이 럭셔리하다(쿨하다는 것과는 좀 다르다).

그래서 재밌다. 그동안 럭셔리라고 하면 명품들이나

돈 많이 쓰는 부자들한테나 통용되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실제 부자 2세들이거나

쇼핑 중독자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졸부들처럼

천박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럭셔리하다는 게

이 책만큼 잘 어울리는 것도 없는 것 같다.

난 개인적으로 블레어가 제일 맘에 든다. 친구들을 휘어잡을 카리스마는

분명 부족하지만 자신의 이인자적 정체를 누구보다 잘 알고 그리고

벗어나 보려고 애쓴다. 네이트와 반드시 첫경험을 치루고 싶어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런 과정들 속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감정 변화들이

귀엽다. 어찌 보면 60년대나 70년대 미국 흑백영화에 나오는

넓은 플래어 스커트를 입고 머리띠를 한 금발의 오동통한 미인을 연상시킨다.

가십걸의 엿보기, 혹은 훔쳐보기 코너도 이 책을 새롭게, 신선하게

읽히게 만드는 요소인 듯하다.

그냥 별다른 생각없이 보면 내 머리 속에서 반짝반짝 뭔가가 반짝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런 책이다.

3권은 언제 나옵니까아아아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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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 - 제40회 일본 문예상 수상작
이쿠타 사요 지음, 김난주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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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소설들이 무척 많이 눈에 띤다.

그만큼 수입을 많이 하는 것인지, 또는 그만큼 많은 독자들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국내 작품들에 대한 식상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네들의 감성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은 또다른 즐거움 중

하나임엔 틀림없다. 특히 젊은 작가의 작품들이 그렇다.

바로 며칠 전에 나온 <오아시스>는 독특한 작품이다. 작은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창출해내는 것으로 일본인들이 유명하다지만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을 통해 그것들 사이에 실낱 같은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는 감정선을 다스리는 재주 또한 탁월한 듯하다.

표지 부분에 있는 카피는 상당히 자극적이었다. 엄마를 대형쓰레기라고 표현한 것 말이다.

아직까지 엄마,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는 신성불가침한 영역이어서

아무리 막돼 먹은 자식이라도 엄마만은 함부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게

내 상식이고, 일반 사람들의 상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엄마를 두고

대형 쓰레기라니, 이런 선입견을 앞세워 읽어나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윤리의식이라는 것은 인간관계에 있어, 특히 혈연관계에 있어

그닥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대형 쓰레기 엄마는 가슴 아픈 현실, 아련한 과거의 기억, 그리고 더 나아가

얼마 전에 죽은 친구에 대한 슬픔의 역설적 표현이었던 것이다.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는 주인공의 행위들은 아주 사소하게 묘사되고,

하는 일 없이 집안에만 죽치고 있는 무능력해 보이는 엄마를 바라보는

딸 둘의 시선은 건조하다. 메말라 있다. 그런데 촉촉하다.

다 읽고난 후에 오아시스, 그 촉촉함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엄청 큰 스케일의 서사 구조를 지니고 있진 않지만 사건들을 통해 전달되는

잘 정리된 감정 표현은 이 작품의 큰 매력일 것 같다.

일본의 젊은 작가들은 이런 글쓰기에 능하다.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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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모자이크 살인
줄리오 레오니 지음, 이현경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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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단테라고 하면 교과서 어느 한 군데서쯤 외워야 할 인물 중 하나였다.

그의 <신곡> 또한 왠지 무겁고 장중하며 지나치게 고전틱한 책이어서

그 작가인 단테 역시 그런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단테는 그런 이미지를 단칼에 부숴버린다.

이 책에서 단테는 권력지향적인 속물이기도 하고,

부하들에  대해서는 엄한 한편 신경질적인 상사이기도 하다.

게다가 신비의 수수께끼 무희인 안틸리아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리기도 하는,

어쩌면 내가 처음부터 갖고 있던 이미지의 권위있는 문학의 대가는 아니었다.

'망토가 다시 그녀의 알몸에 덮여져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 그녀의 몸을 감춰줬다. 그녀는 베일을

허리춤에 두른 뒤, 숨을 고르기 위해 한참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신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한없이 흥분시켰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단테는 그 공연을 보는 동안

내내 입을 벌리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그는 갑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졌다."(본문 중에서)

이렇듯 <단테의 모자이크 살인>은 주인공인 단테의 성격부터 시작해 그동안 보아왔던

팩션들과는 사뭇 다른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좋은 소설 읽기가 예전 같지 않았던 최근 점점 나를 흡입해 가는 소설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웠던지,

그런 나를 이 책은 충분히 만족시켜준다.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빠져 들어가는 미스테리어스한

분위기, 그리고 틈틈이 등장하는 중세 인문학적 지식들,

아마도 이 책을 읽지 않고선 중세 유럽의 분위기를, 단테를, 단테의 자작들 함부로 논할 수 없을 것이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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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멀 - 인간과 함께 사는 동물들의 인간적인 이야기
박순구 지음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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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작품은 책으로 나오기 전부터 이미 관심있게 지켜보던 작품이었습니다. 처음 본 건 <계간만화>라고 하는 잡지에서였고, 그렇게 관심을 갖다가 우연히 작가의 홈페이지를 방문하게 됐고, 또 아침 무료신문에서도 봤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경향신문의 만화 섹션에 같은 작가의 작품이 실렸던 것도 압니다. 아, 또 있네요. EBS의 직업의 세계에서도 소개됐다고 합니다. 제법 많은 것을 알고 있었네요. 그렇다고 이 작가의 친척이나 친구는 아닙니다. 그냥 이 작가의 작품이 좋아서 자꾸 따라가고 찾다보니 알게 된 사실들입니다. 이런 얘기를 구구절절 말씀 드리는 건 책에서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어서 그런 건데요, 책이란 것이 작가의 사상을, 또는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휴머니멀>이란 작품이 딱 그런 게 아닌가 싶어서요. 정말 <휴머니멀>을 보면 작가가 보고 싶어집니다.  만나보고 싶어집니다. 만나면 거기 표지에 나오는 동물들의 눈망울을 가진 동물 같은 사람이 있을 것처럼 상상됩니다. 가장 가슴이 아팠던 작품은 '사랑합니다'였습니다. 유기견에 대한 짧은 단상 같은 작품인데, 제 가슴 속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앞으로 특별히 유기견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이라거나 애완견을 좋아하게 될 것 같다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대사처럼요, "사람들, 용서받을 수 있을까?" 아, 또 있습니다. '나에게 쓰는 편지'의 대사인데요, "우리 엄마, 바람을 닮아 아이가 돼버렸어."라는... 꼭 한번쯤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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