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 쇼 The World of Eric Carle
에릭 칼 지음, 홍연미 옮김 / 시공주니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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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쇼

아이가 내게 책의 뒷면을 보여준다.
나는 무심코 그림을 바라본다.

꽃 아래, 모자
모자 아래, 탁자
탁다 아래, 뚫어 뻥
뚫어 뻥 옆에, 옷걸이 다리

"그게 뭐가?"
하던 일로 눈을 돌리며,
별 생각없이 나는 중얼거렸다.

"뭐가 보여요?"
"글쎄"

아이는 끈질기게 물었다.
어서 하던 걸 마저하고픈 나는,
대충 보이는 걸 말했다. "사물을 붙여놓거잖아" 하고.

아이는 한숨을 푹 쉬었다.
"역시 어른들은 안돼.
이건 사람인데, 모르잖아요. 울엄마도 똑같애."

순간 떠오르는 책,
떠오르는 장면이 머리를 스쳤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어린왕자 속 '나'가 어른들에게 보여준 그 그림.
나는 아이의 눈과 마음을 가진 어른이고 싶었는데
나도 ㅎㅎ 내가 칫 했던 책 속 '나'가 마주했던 기성세대, 아이를 잃어버린 어른인 건가? 했다. 당황했다.

에릭칼이 초대하는 환상의 쇼, 뒤죽박죽쇼.

에릭칼은 그림책 시작에 앞서 헌사를 남긴다.
'르네 마그리트를 위해'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가 남긴
'이건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작품과 함께.

에릭 칼은
마치 어린왕자처럼 눈에 비치는 현상과 환상,
현실과 상상에 자그마한 다리를 놓아 특별히 내게만
보이는, 하지만 보는 방법만 알면 모두가 볼 수 있는
신기하고 신비롭고 신나는 세상으로 초대한다.

뒤죽박죽 일상.
특별한 일은 아니다. 헐레벌떡 늦지않기 위해 뛰고 있을 때 '이 몸이 새라면' 노래를 떠올리고, 보이지 않는 날개를 확 펼쳐보는 일. 아이와 둘이 숨바꼭질 할 때, 아이는 마치 자기가 투명인간 인 양 안보이는 척 하고, 엄마는 아이의 상상, 아이의 놀이에 부응하고자 보여도 안 보이는 척 스쳐지나가는 일. 서로를 위한 음식에 내가 좋아하는, 너도 좋아하는 재료를 마법의 가루마냥 넣고, 그걸 먹는 상대의 표정 속에서 행복의 꽃이 피어있는 듯한 모습을 보는 일. 총부리가 아름다운 꽃다발로 바뀌며 서로에게 선사하는 일.

되돌이표로 계속 이어지는 일상을 이상과 섞어 조금은 다르게, 조금은 신기하게, 조금은 낯설게 삶의 파랑새들과 어울려보는 그런 시간을
쪽과 쪽 사이사이에 연습하듯 익혀볼 수 있는 그림책이었다. 오늘의 구름이 '오겡끼데스까~~'하며 안부를 전하는 오래된 친구들의 얼굴처럼 보이는 건 그림책을 열심히 들여다 본 덕일까?

일상 속에서 르네마그리트 처럼
일상 속에서 어린 왕자처럼, 에릭 칼처럼
순간순간을 섞어보는 일상 요리사가 되게 하는
그림책이다.

-열두살 두찌는 그림책을 보고는?-
굉장히 특이한 그림책이었어요.
기차에서 나오는 양구름, 사람을 훈련시키는 사자,
호랑이와 치타가 합체한 치랑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이다와 콜라와 쥬스를 합쳐 본 적 있어요.
언니는 그런 나를 보고 찡그렸구요.
언니의 바비 몸에 내 공룡 다리를 붙여본 적 있어요.
풍선 바깥에 점토를 붙이고 캐치티니핑으로 만들어 본 적도 있어요. 군고구마를 밀가루에 치댄 다음, 경단 만들고 다시 쪄서 엄마에게 준 적 있어요.
나는 자유자재로 뒤죽박죽 쇼를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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