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방 - 나를 기다리는 미술
이은화 지음 / 아트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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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것이, 자발적으로 들어간 고립의 방에서는 전혀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시공간을 초월한 여행에 빠져들었다. 손가락만 움직이면 지구촌 곳곳으로 연결될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화집이든 전자기기든 펼치기만 하면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어느 골목길로, 17세기 델프트의 항구로, 19세기 파리 중산층의 거실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중략) 고전 명화에서 위로받기도 했고, 직면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그림이 가진 힘이다. p5

 

누가 나에게 예술가는 누구인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지상으로부터 20센티미터 정도 떠 있는 사람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너무 높으면 자세히 볼 수 없고 현실 속에 파묻히면 좁게 볼 수 밖에 없다. - 윤석남

 

정신적이든 물리적이든 아직 자기만의 방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절,

생존을 위해 내가 필요한 아이와 내가 없어져버린 시간 속에서

마냥 부유하는 것만 같았던 그 시절이 있었다.

구석으로 몰리다 소멸되지 않도록, 작은 구멍을 내어준 도구가 책이고, 그림이었다.

2015년 뛰지않는 심장을 부여잡고 찾았던 전시 '심장'전에서 인생의 그림을 만났다.

두 사람이 있었다. 각자의 줄에 매달린 둘은, 같은 방향을 보지 않는다.

둘의 색도, 둘의 모습도 다르다. 하지만 내 눈에 둘은 회전하는 것 같아 보였다.

각자의 속도대로 돌고 돌다 잠시 눈이 마주치는 시점에서 둘은 마주한다. 

다시 만나는 사이, 잠시의 접점이 있는 존중을 공유하는 삶. 가능성을, 위로를 받았다.

삶이란, 관계란, 이런 것이구나. 괜찮다, 모든 것이 일치하지 않아도. 

 

당시의 그 기분을 안고,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의 수전처럼 방에 들어섰다.

<그림의 방> 이라는 호텔의 다섯가지 방 

발상의 방, 

행복의 방, 

관계의 방, 

욕망의 방, 

성찰의 방을 넘나들며 60점의 명화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현재의 삶,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산다는 베일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삶의 본질에 가까워졌다.

 

예술은 자유롭기에 예술에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없다는 바실리 칸딘스키의 말에

개인의 삶 역시 자유롭기에 삶에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없는데, 반드시 그래야 하는

사회적 틀에 꼭 맞도록, 그게 아니면 틀린 삶인것 마냥 느끼는 나를 발견했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던 시절, 예술이라는 행위 안에서 누가 뭐래도 선명하게 자신을 드러냈던미카엘리나 바우티르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를 보며 다물었던 나의 입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현실을 그리며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프리다 칼로를 보며,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에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선택해 스스로 들어간 고통이 아닐지, 그렇다면 그것은 스스로 감내해야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내 안의 심장을 뛰게 하고 싶다면

일상을 열심히 살다가도 자기만의 방에 들어가야 한다.

물리적 공간도 좋고, 정신적 공간도 좋다.

가장 손쉽게 자기만의 방을 만들수 있는 마법의 도구, 책과 그림.

그림을 통해 그림 속의 상황과 대상간의 관계를 그림 너머에서 바라본다.

나를 이입시키고, 동시에 그림 속의 나와 현실의 나를 분리시킨다.

삶의 주인공을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평가 후 행동을 수정할 수 있는 좋은 도구.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 줄 요소 중 하나 인 그림. 

또 하나의 19호실을 발견한 것 같아 즐겁다. 

 

P.S : 따라하고 싶었던 작품.

관계의 방 : 소피 칼의 <잘 지내길바라>

남자친구로 부터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은 소피 칼. 

그녀는 결별과 안부를 담은 이메일의 모순 앞에 당황을 한다.

그리고 107명의 여성 지인에게 이 이메일을 보내고, 지인들은 해석과 분석을 한다.

교사는 맞춤법 교정으로, 국가정보원은 암호문으로, 댄서는 춤, 가수는 노래, 동화작가는 동화로 각자의 방식으로 재구성된다. 지극히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일화가 107명의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객관화와 치유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는 전시가 된다.

 

익숙함 속 낯설게 바라보기를 취미로 습관으로 자기잡고 싶은 나.

미적 감각이나 예술적 감각이 없는 나도 '할 수 있겠다' '하고 싶다'고 마음이 동한 작품이었다.

민들레 하나가 바람이 불어 씨앗이 퍼지며 온 세상으로 나아가 아름답게 피어오르듯

한 사람의 이야기가 여러 관계 속에서 어루만져지며 위로받을 수 있음을 발견했고,

일상에서 이런 작업을 시도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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