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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거인 - 어린이 책을 고르는 어른들을 위하여 ㅣ 바깥바람 10
최윤정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7년 5월
평점 :
아무개 엄마와 아버지로 불리는 순간부터 아이는 나의 정체성의 일부가 된다. 날마다 내 눈앞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 그 아이와의 관계는 나의 실존이기도 한 것이다.
아이라는 거울이 되비추는 내 모습을 동화 속에서 다시 한번 음미하는 작업, 혹은 아이와 더불어 자라는 일, 아이를 낳고 기르고 가르치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지나쳤을 내 안의 슬픈 거인을 만나는 일, 행복해지려면 죽을 때까지 성장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인간에게 그것은 정녕 행운이다. p14
책을 읽기 전 기대를 했었다.
초등학교 들어간 내 아이를 위한 책들,
양질의 책을 고르려 이 책을 선택한 부모들,
좋은 책이 좌라락, 부모들에 대한 칭찬 좌라락 나올거라는 기대.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칭찬아닌 혼쭐이 났다.
부모가 원하는 것과 아이가 원하는 것은 다르다.
먼저 아이에게 "진정 네가 원하는게 무엇이야?"라
물어본 적이 있는지 의문을 던진다.
아이를 양육하고 보호하려고 한 나머지
아이의 의사, 자기 삶을 살고 있는 아이의 권리를
무시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아이를 위해 고르는 어린이 문학
아이가 잘되길, 아이에게 도움이 될 책들을 고르며
과연 부모인 나는 그 어린이 문학을 확인하는 작업을
거쳤는지 되돌아보았다.
그저 재미,
그저 교훈,
그저 추천,
그저 수상 그런게 아닌
문학속에 서술된
어린이라는 세계의 본질과
아이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끌어와
내 아이에게 대입해 보았는지 떠올려보았다.
사실
나는 어린이 문학을 즐겨 읽는 독자였다.
어린이 문학 속의 아이를 통해
아픈 내면 아이를 무감각의 갑옷으로 입힌 만났고,
되고 싶었던 나를 만났고, 미웠던 사람들을 용서하고,
또다른 세상을 탐험했다.
슬픈 거인을 만났었다고 자만했었다.
슬픈 거인은 안녕 하고 충만한 거인만 있다고.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 갈수록 스스로가
오스카 와일드의 <정원의 거인> 속 거인
같았다.
시끄럽다고
정원의 어린이들을 쫓아내고,
겨울이 왜 끝나지 않고
봄이 오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거인.
거인의 옆
책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이 문학으로 내 안의 어린 나를 어루만지지만
정작 내 품의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어린이의 세계를
걷고 있는 슬픈거인 같았다.
제대로 만들어진 책
어린이라는 과정의 교집합
그리고 웃음
봄이 오지 않은 이유를 깨달은 거인이
바로
아이들을 초대한 것 처럼
세가지의 도구를 가지고
아이들을 어린이 문학이라는 정원,
엄마와 뛰놀 수 있는 정원에서 놀아야겠다.
봄이 오는 골목에서 서 있는 저자.
저자의 봄이 무엇인지
책을 통해 알았다.
슬픈 거인이
더 이상 슬프지 않고
따스하고 다정한 거인으로 거듭날 존재.
어린이
그 어린이에게
제대로 된 책을 줄 권리를
돌려줘야겠다. 따로 또 같이 읽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