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내가 살게 네 삶은 네가 살아
옥영경 지음 / 한울림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내 삶은 내가 살게
네 삶은 네가 살아

옥영경
한울림

제목에 이끌렸다.

가정을 이루고 사는 딸
가정을 이루지 않고 사는 아들

한국에 살고 있는 자식들
외국에 살고 있는 자식들

자식들 걱정을 하는 친정 부모님과 시댁 부모님에게,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아이의 손을 놓지 못하는 내게

외치는 메시지 같았다.

공부에 열정적인 것도
공부를 특별하게 잘 하는 것도 아닌

어느 시기라도
필요에 따라
흥미에 따라
공부를 했던 우리집 남자와 나

하지만 유아를 지나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을 앞에 두고는
부부가 결의했던 공동의 교육에 대한 생각이
흔들릴 때가 있다.

내가 살아가는 게 아닌
내 아이가 살아가는 길

아이를 위하여 라는 타이틀로
아이의 권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과 함께.

남들 사는 대로 산다고 우리가 불안하지 않을 것도 아니었다, 위로라면 그거였다.
살아볼밖에, 우안이라면 또한 그것이다. p96

씨앗을 뿌리고 장미를 기대했는데 나온 것은 제라늄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계획을 바꾸어야 한다. 원래 내가 바라던 장미처럼 물을 주고 거름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정해야 한다. 제라늄은 장미가 아니지만, 적어도 건강한 제라늄으로 키울 수는 있지 않겠는가.
장미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건강한 제라늄으로 얼마든지 행복할 권리가 있고 잘 살아갈 수 있다. p99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친절한 금자씨>가 내뱉었던 한마디.

“너나 잘하세요!” 다.

행복이란 게 무엇이겠는가. 마음이 좋은 상태를 말하지 않는지!
그게 또 어디 마음으로만 되던가. 몸이 덜 고달파야지.
몸이 덜 힘들고 마음도 좋으니, 아이를 바라보는 결도 순순했을 테고
아이 또한 그만큼 순순하게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친절을 가장해도 우리의 결을 아이들은 알고야 마니까.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고 싶다면 엄마 마음 좋기, 엄마가 편안하기, 엄마가 먼저 행복하기!”
p79

어떤 식으로든 어른들 영향권에서 아이들이 자라므로 우리 삶이 중요한 거다.
“그러니 괜히 엉뚱한 애들 잡지 말고 오늘은 우리 삶이나 좀 짚어보지요.”

자유학교나 대안학교를 떠나
옥영경 교장 선생님과 그의 아들 한단을 통해
학교, 학교 선생님, 아이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공부로, 공부로 아이들을 몰고 갈 때 그것을 먹고 자라난 어린이 ‘건강한 사람’, 나아가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이 되는 건 아득한 일이 아닐까.
그래서도 ‘일해야 한다’는 물을 하려는 참이다. 아이들이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몸 쓰는 것도 꼭 필요한 공부다! 대단한 노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엄마 안 찾고 밥 한 끼 제 손으로 차려 먹을 수 있고, 앞에 널린 것 치울 줄 알고, 운동화도 제 손으로 좀 빨고….
나는 내 노동이 타인의 노동을 이해하게 하고 타인에 대한 예의도 길러준다고 믿는다. p32

아이가 만나는 모든 것이 학교고 공부라는 말은 가르치는 존재로서의 교사, 학교로서의 공간을 동시에 의미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아이들 앞에 서는 한 교사다. 아이들은 보는 대로 배운다는 의미에서, 또한 가르치는 대로만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아이들은 어떤 공간에 있던 배운다, 무엇이든 습득한다는 의미에서. 그래서 아이들이 있는 곳은 어디나 학교인 것이다. p118

"누군가는 60등을 한다. 네가 그 60등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네가 살 이유가 없거나 존재할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우리 교실에서 누군가는 분명 꼴찌를 한다, 그게 나라고 해서 내 삶이 가치 없는 건 아니다. 성적순은 있을지라도 존재순은 없지 않겠는가. p54

“엄마는 학교 안가서 좋겠어요. 엄마는 시험이 없어서 좋겠어요.”라는 딸의 말에 발끈했던 엄마인 나는 한단군의 이야기에 위로를 얻기도 했다.

“속 모르는 소리 하지 마! 나는 사는 일에 대한 걱정으로 항상 고달파. 수도가 얼까 봐, 보일러가 터질까 봐, 전기가 나갈까 봐, 이 넓은 공간을 청소하느라….” p34

가족이란 깊은 역사를 함께 했음을 전제로 하는 관계이며,
고생한 세월을 알아 그것을 헤아려 위로해 줄 수 있는 관계라는 말.

나와 친정 부모님
우리집 남자와 시댁 부모님

가끔은 방향을 잃어버리는
상대의 부모님에 대한 생각도 존중해줘야하는 부분인 것 같다.

아이와 나는 그런 날들을 같이 지나왔다. 이제 그는 엄마와 점점 분리되어 넓은 세상을 향해 가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다른 누군가와 삶을 연대하며 살아갈 것이다.
세상 무슨일이 벌어지더라도 온전한 내 편 하나 있다면 크게 어긋나지 않고 살아갈 우리 아이들이라. 그 편인 사람 하나가 엄마인 거라.

신뢰를 주고 받는 부모자식 사이
함께 버물어진 삶의 역사
희노애락으로 서로를 보듬어 줄 수 있는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해야겠다.

언젠가
아이이 손을 놓아야 할 시기에

떨어져도

“잘 살고 있나요?
나는 잘 지내요.“
할 수 있도록 말이다.

“별일 없으시죠? 어머니 잘 지내시는 게 절 돕는 거예요.
각자 잘 지내는 게 서로를 돕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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