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베티 큰곰자리 47
이선주 지음, 신진호 그림 / 책읽는곰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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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는 아이
엄마에게, 선생님에게, 친구들에게 착한 아이
착하지만 재미없는 그래서 늘 혼자인 아이

가수 아웃사이더원을 좋아하는 아이
한고비 한고비를 넘겨 저녁이 되길 기다리는 아이
저녁 아웃사이더원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은 아이

서연.

12살 서연의 방으로 동갑내기 외국인 소녀가 머물게 된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면 흔히 볼 수 있는 동남아 사람은 나에게는 외국인이 아니라, 그저 못사는 사람일 뿐이다. 그 사람들을 이방인이라고만 생각했지, 외국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p24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린 어머니 사이에서 낳은 자녀.
그들은 코피노라고 불린다.

코피노 베티.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아버지를 찾으러 온 아이였다.

-
《이주민,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쳤고, 몇몇 사람들은 불쌍하다며 혀를 찼다.
또 몇몇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쟤들 다 돈 뜯어내려고 그러는 거야.”하고 내뱉듯 말했다. p102

기자는 다짜고짜 반말을 했다.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굴면 누가 너를 돕겠어? “ p100

남자가 앤절라 아줌마를 경멸하듯 내려다봤다.p121

영화 『방가방가』와 『국가 부도의 날』의 장면이 떠올랐다.
무조건 반말에 욕설,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버린 이주노동자들이 생각났다.

그들도 그들의 나라가 있고, 가정이 있고, 살아온 역사가 있다.
그들은 우리를 대신해 우리가 하기 힘든 일, 하기 싫은 일을 해 주는 사람이다.
그들은 한국어가 능숙하지 못해 어눌할 뿐이지, 우리와 같이 생각하고 표현하고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다.
서연이의 말처럼 그들은 흔히 볼 수 있다.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방인이 아닌 그냥 한국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여기면 되지 않을까?

소수가 다수에게 다가기기 보다는
다수가 소수를 포용해주는게 더 빠르고 쉽다.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그냥 존재 자체만 인정해주면
그러면 서로 편안해지지 않을까? 왜 그건 쉽지 않는 걸까? 생각해 본다.

-
《어린이의 기분을 느낀다.》

베티는 아빠가 그리워서 우는 게 아니다. 엄마와 미정이 아줌마가 자길 동정하는 게 너무 싫어서 우는 것이다. 그런 확실히 드는 순간, 처음으로 베티에게 동질감이 느껴졌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멋대로 남의 마음을 판단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남한테 얼마나 큰 상처를 주고 있는지 모른다. 이를테면 우리 엄마 같은 사람들 말이다. p42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맞다.
나와 같은 마음, 나와 같은 기준으로 상대를 바라보곤 한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부터.
『그냥 베티』에서 가장 뜨끔한 부분들은
이주민, 이주노동자에 대한 어떤 편견이나 선입견 어린 시선이 아니라
이주민의 자녀들 그리고 나의 자녀들과 같은
어린이의 마음, 어린이의 기분에 관한 문장들이었다.

엄마는 나를 위하는 척하지만, 실은 자기 화를 참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면 그게 나를 위하는 일이라고 착각하고 있거나.
차라리 ‘초대받지 못해서 속상했지?’라고 했다면 이렇게 밉지는 않았을 것이다. p77

내 몸이 비쩍 마른 건 엄마가 잘 못 챙겨줘서 그렇다고 미안해한다.
그런데 왜 내 마음이 시들어 가는 건 눈치채지 못할까?
내 몸무게 보다 내 마음이 덜 중요한 걸까? p80

-
《내 속의 나를 발견해 준 존재, 친구》

“마음이 허하면 속이라도 든든해야 한다고. 앤절라는 마음을 본 거야.
내 마음을…. 내 살이 아니라….“
그렇게 친구가 됐구나!
마치 베티가 내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재미있는 나’를 발견해 준 것처럼
앤절라 아줌마도 엄마의 마음을 발견해 준거다. p146

소중한 친구들.
각자의 시간, 각자의 사람들, 각자의 일에 쫓겨 잠시 잊고 있었던 나의 소중한 친구들.
마음을 채워 주는 친구들이 생각난 구절이었다. 언제나 곁에 있기에 따스함도 고마움도
미지근해졌던 나. 따스한 차를 데우듯 내 마음의 차를 데울 워머를 켜야겠다.

마음을 발견해주고 채워주는 친구를 아는 서연이의 엄마, 정희
하지만 서연이는 엄마로 인해 곤란해졌다.

내 경험이 나만의 경험 나만의 발견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아이의 경험 아이의 발견을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고, 비춰줄 수 있는 등대 같고 싶은데,
현실의 나는 서연의 엄마다. 씁쓸하다.

베티와 서연.
서연과 베티.

서로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 안에 사랑스러운 ‘나’를 만났다.
알에 숨는 대신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온 베티와 서연.

이제 각자의 나라에서 각자의 시간을 걸을 아이들.
하지만 전과는 다를 것이다.

마음의 벽이 없이 눈 앞의 그냥 한 사람을 만나는 청소년, 어른으로 자랄테니까.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날 두 사람을 그려본다.
두 사람으로 인해 세상의 공기가 조금 바뀔 것을 기대해 본다,

나 역시, 그리고 내 아이 역시.
베티와 서연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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